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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05. 2022

날 좋은 날

과학과 에세이

매일이 맑고 청연하면 좋았으련만, 따져보면 쾌청함은 일 년에 몇 없기만 하다. 여름 지나 추위가 오기 직전, 가을의 틈새. 겨우내 추위가 슬며시 물러가려는 늦봄에서 여름의 초입. 그렇게 얼마 내어 주지 않는 날 좋은 날을 사진이든 기억이든 어딘가에 담아두려 애쓴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조용히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오늘 같은 날씨가 죽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그렇듯, 막연한 바람은 대게 잘 안 이뤄질 때가 많다.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맑은 날'은 많아야 100일 정도니까. 거기에 여름과 겨울처럼 극단의 기온으로 휩싸이는 날이 아닌, 포근하고 시원한 온도는 얼마나 되려는지. 낮에는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고, 밤이면 별도 보이는 그런 날. 일광이 너무 따갑지 않고, 운량도 적절해 구름이 하늘을 적당하게 채우는 날. 따스한 봄 냄새나 청량한 가을 내음이 느껴지던 날.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날. 돌이켜봐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선명히도 남아있던 몇 없는 날들.


드문히도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결국 모두는, 얼마 되지 않던 날 좋은 날을 기억하며 흐린 날을 버텨내듯이. 궂은 날을 이겨냈던 것처럼. 날 좋던 날에 담았던 추억을 상기하며, 날이 좋다면 또다시 놀러 가자고 언약을 하듯이. 이제는 막연했던 바람과는 다른 바람을 간직한다. 날 좋은 날을 일상에도 잊지 않고 한 번씩은 떠올릴 수 있도록. 안 좋던 날의 존재 덕에 다가올 날 좋은 날이 더욱 가치로워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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