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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Jan 13. 2024

'라라네 맛집'을 소개합니다

저는 수도권의 작은 시골 마을 전원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한 그해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등을 웅크리게 만들던 즈음... 

집 근처에 삼색냥이 한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짝 마른 몸으로, 혹시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아이고, 귀여운 아가가 또 찾아왔네.'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냥이의 앙상한 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이 아가는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에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자기야, 나 저 냥이에게 남는 사료를 조금 줘도 될까?"


저와 남편의 고민은 동일했습니다. 

'사료를 주는 하등의 문제가 없지만, 만일 새끼라도 낳아서 데리고 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 집에는 벌써 두 녀석의 치와와, 두 녀석의 냥이들이 우당탕탕 살고 있는데 말이지요. 

'길냥이 밥을 주는 걸 이 동네에서 싫어하면 또 어떡하지?'



얼마 동안의 고민 후, 저는 퇴근 후 우동 그릇에 사료를 담았습니다.

그리곤 마당 한 켠에 살포시 놓아두었지요.

다음날 나와보니, 그릇이 깨끗했습니다.

"아! 삼색이 녀석이 다녀갔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뚝딱뚝딱 바람막이도 만들었습니다. 

너무 번듯한 집을 마련해 주면 혹여 새끼들을 낳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염려때문이었을까요?

정말 딱 바람만 막아줄 정도의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전 남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요. 

길냥이가 밥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눈비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은 바람막이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올해 두 번째 겨울을 맞았습니다. 

지금은 어떻냐구요?

그 바람막이는 지금 어엿한 '라라네 맛집'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름 지었지요.

삼색이 녀석은 꼬리가 짧아 '짤순이'라는 어엿한 이름도 생겼습니다. 

처음엔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던 녀석이 이제는 퇴근 후 저희가 오면 버선발로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퇴근하자마자 짤순이에게 사료를 주는 게 저의 루틴입니다. 

저를 보면 이젠 발라당 발라당도 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게 여간 예쁜 게 아닙니다. 

살도 오동통통 쪄서 미모가 물이 올랐지요. 


그리고 지금 라라네 맛집은 짤순이만의 전용 식당이 아닙니다. 

짤순이보다 더 애교가 넘치는 '회색이', 과묵하고 조용한 '깜쟁이', 최근 새롭게 등장한 녀석인 '숯껌댕이'까지... 

자기들만의 위계질서대로 맛있게 밥을 먹고 가는 녀석들을 보는 게 이젠 저의 기쁜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남편이 만들어준 바람막이 아래서 짤순이가 밥 먹고 있어요
오늘도 과묵하게 저를 기다리는 '깜쟁이'

참! 저희 라라네 맛집 아가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느 날 동네의 한 아주머니께서 테라스에 나와 있던 제게 말을 걸더군요. 

"혹시, 고양이들 밥을 주시고 있는 거 맞나요?"

'아... 이젠 이 일도 못하게 되나 보다' 싶어 풀이 죽은 채로 대답을 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아주 의외였습니다. 

실은 그 아주머니께서 동네 길냥이 녀석들 몇몇을 중성화 수술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 집 마당에서 밥을 먹는 녀석이 아무래도 그 녀석 같다는 거였지요. 

그러면서 귀에 난 표식을 나중에 확인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오는 녀석들 중 숯껌댕이 말고는 모두 귀가 아주 약간 잘린 표식이 있더라구요. 

그 아주머니는 제게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며칠 후 집 앞에 길냥이들을 위해 사료도 놓고 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사람의 얼굴을 한 천사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밤도 역시 북적일 '라라네 맛집'! 

언제까지 항상 인기 있기를 바라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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