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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28. 2024

"아이 스스로 자갈 밭을 걷도록 내버려 두세요!"

아홉 살, 일곱 살 남매를 키우는 엄마도 자녀양육이 어렵고 힘든 건 단 한 가지 이유다.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지만 대소변 가릴줄알고 소통가능하고 스스로 하고싶은게 많아져 고집이 생기고도 남을 중간 그 어디에즈음의 나이다. 그럼에도 늘 부모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이유는 양육에 대해 정해진 표본,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앞날이 기다리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만 명이면 만 명, 백만 명이면 백만 명 다 다른 인격체가 모여사는 이 세상에 내 아이가 나의 육아 첫 경험이고  언제나 첫 표본이 될것 임이 분명하다. 그런 아이의 앞날을 가능한 안전하게 조금은 덜 힘든 곳으로 안내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가능한 좋은길 이른바 꽃길만 걷게하기위한 모든 과정은 고민과 선택, 그것도 차선책(후회의 여지가 있기에) 으로 채워져있다. 스스로를 위한 혼자만의 결정이라면 애초에 결정이 끝났을 문제들도 자녀가 결부되면 그 예시가 수십 가지로 늘어난다.


'(부모의 입장에선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 아이가 옮긴 학교에서 잘 적응할까?'
'(초대받지 못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나 같으면 서운하다가도 안 불러줘서 차라리 다행일 것 같지만) 내 아이만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까?'
'(나도 어린 시절 일기, 공부 밀리는 게 생활이었지만) 내 아이가 이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학교생활하면서 뭔가 큰 고민이 있는 걸까?'


정말이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오만가지 상상을 몇초만에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그 고민을 끝까지 좇아가다 보면 그것은 아이를 위한 고민이라기보다 언젠가 내가 겪을까 두렵고 겪어봐서 아팠던 기억에서 비롯된 우려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과잉된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 어떤 빗나간 사랑의 이면을 보여주는지 주변에서 보아 잘 알고 있고,  아이에 대한 방임과 무관심이 아이를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 지도 알고 있다. 첫 번째는 어린시절 내 언니에의 양육과정이고 두 번째는 나의 양육과정이었을 터.


조금 더 심한 경우 부모의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숨긴체 아이를 위한 우려인양 아이에게 진짜 상처를 주기 시작한다.


"(아이가 친구랑 놀다가 싸워서 울게 됨) 혹시 너한테 평소에도 그렇게 하니?"
"(내 아이는 초대받지 못한 친구의 생일파티를 알게 됐을 때)"걔는 왜 너만 초대 안 했다니?"
또는 부모가 나서 생일주인공 친구의 부모에게 직접 연락하는 등 아이의 문제에 부모가 관여하는 일 등


정작 아이는 당장은 서운했을망정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회복 할 힘이 있다. 그렇기에 더는 문제 삼지 않거나 애초부터 깊은 상처가 아닌 경우도 많다. 오히려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문제를 들쑤시기 시작하면 아이는 그때부터 심각해진다. 그 와중에도 부모는 아이의 (자신이 듣고싶은) 대답만 듣고 보통은 대화를 종결시킨다. 사실 아이에게는 그런 질문에 대한 뒷수습이 더 문제일 텐데 말이다.


극단적인 예로 설사 엄마품에 부둥켜 안긴채로 서글프게 대성통곡 할만큼 크게 슬퍼하더라도 부모는  감싸주고 토닥여주고 이해해 주는 일외에 가급적 아이들 관계에 나서지 않고 또래들끼리 해결하게 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더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동시에 아이의 옆에 부모가 항상 있음을 알려주고 언제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음을 부모의 태도를 통해 넌지시 알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반응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거나 함께 운다면 그때부터 아이는 더 많은 걱정을 안게 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모든 감정에 있어서 유경험자인 것처럼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더구나 부모스스로가 어린 날에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독하게 마음먹고 최대한 감정적으로 언행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모든것을 다 알고 있다해도 그것을 머리로 아는것과 공감해서 체득한 것과는 실전에서 달라짐을 보여준다. 물론 내 얘기다.하하.




긴시간 지켜왔고 가끔 흔들릴망정 배우자를 통해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왔던  나의 다짐과 약속을 오늘 나는 스스로 져버렸다.


어제 저녁, 첫째 아이가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 다소 껄끄럽지 않은 상황에 있었음을 감지했다. 이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감지'라는 표현부터가 이미 주관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느끼거나 내 눈으로 끝까지 직접 본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본 상태에서 그 과정은 나의 주관이 포함되었음을 인지한다.


 다만 첫째 아이가 평소에도 나이에 비해서 제법 단단한 마음을 가진 편이고 감정의 기복도 크지 않은 편이라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자꾸만 한가닥의 껄끄러움이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을 땐 이미 전후 사정 설명 없이 아이에게 질문폭격을 한 상태다.


더 심각한 나의 파행을 마주하기전 불행중 다행으로 질문의 중간즈음 나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유야무야 웃으며 "그래? 다행이다. ㅇㅇ이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대화를 종료했지만 여전히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감출길이 없었다. 이곳에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꼭 반성문 같은 성격일지 모른다.


그 불안의 화살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아서 나에게 짜증이 날 지경이다. 늘 관계에 있어 평생의 가장 큰 숙제라고 여길만큼 세월이 흘러도 조금도 익숙해 지지 않기에 이제는 포기단계에 이르러 회피하는 성향마저 강해졌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긴장의 연속이고 온몸의 근육이 쭈뼛 솟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런 나였기에 어떠한 무리에서의 의도치않은 분열을 겪거나 주류에의 결정과 나의 결정이 다르다면 서둘러 내 결정을 숨기게 된다.


심지어 과거 상담치료를 받을때 의사는 "차라리 많은 사람이 결정하는 쪽으로 선택하세요. 그래야 ㅇㅇ씨는 상처 덜받아요."라는 다소 요상한 말을 들은적 있다. 어쩌면 그말은 자신이 대다수와 다른 의견을 개진하려면 받아들이고 각오해야할 것들이 많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다른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일시한 순간찰나의 틈을 조금만 더 오랜기간 놓쳤다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순간을 맞을 뻔 했다. 천만다행인 순간이었다.




그렇다. 아이는 나와 다르다. 어른과는 다르다. 반복된 숱한 경험 위에 자신만의 가치관이 더해져 굳어버린 신념과같은 것들이 아로새겨진 성인들과는 달리 어떠한 결정을 했었도 보다 바른 가치관을 알려주면 금새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았다 한들 금방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게 아이들이 어린시절 해야할 가장 급선무다.


최근 매체에서 알게된 '이탈리아' 해변가부근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 숙제로 아이들에게 내준 숙제에 대해 다룬 것을 보았다.


여름방학 숙제:  반드시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해변길을 걸을 것


아이에게 차분히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깊이 사고하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목적이었으리라. 어떤 것을 선행하여 외우고 학습해오라는 보통의 숙제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내용이다. 또 한가지는 이탈리아의 초등학교 입학식때 교장선생님이 학부모에게 꼭 당부하는 사항이라고 한다.


제발 아이 스스로 자갈밭을 걸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세요.
스스로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옆에서 도와주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많은 이론들을 백과사전 외우듯 줄줄외며 잘 안다고 여기지만 어느것 하나 실천하기 어려운 내게 이 만큼이나 위안이 되고 기준이 되어줄 말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 아이는 스스로 하게끔 키워야한다. 오히려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스스로 이겨낼줄 알아야하며 가급적 어린시절 겪어야할 여러감정들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이의 슬픔이 내슬픔과 같아서 옆에서 어쩔줄몰라는 어느날에의 나와 같은 부모에게 꼭 힘이 되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도 조금만 더 냉정해지고 조금만 더 단단해지고 조금만 더 강해지기를 바라며. 아이의 감정과 나의감정은 별개라는 것, 아이에게는 아직 발휘하지 못한 대단한 자생력이 있음을 다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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