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님이었고 오늘은 점쟁이다. 아주 가끔 그냥 엄마인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종교명은 모르겠는데 통상 '도를 아십니까'로 대변되는 2인 1조의 사람들과 커피 마시며 세 시간 정도를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붙잡기는 2인 1조가 붙잡았는데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쪽도 2인 1조다. 왜냐면 우리 엄마는 그들에게 절대 돈을 뜯길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필요했으니까. 반면 한 명이라도 포섭하는 게 일인 그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는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커피빈으로 뛰어가서 엄마 팔목을 붙잡고 나오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포교당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 엄마의 대표적 종교는 불교다. 불교가 맞는데 가끔 양상이 이상해질 뿐이다.
아, 가끔 수틀리는 날에는 스님도 이겨먹고 싶어서 도인모드가 되기도 한다. 모든 걸 깨우쳐 법거량이 가능했던 경허선사정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우선 비구니 스님들을 전반적으로 깔본다. (경허선사는 비구니스님을 깔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유는 아직 모른다. 아무튼 뭇사람이 엄마를 단번에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십년 넘게 봐온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비꼬려는 건 아닌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도인이었던 엄마는 오늘이 지나 뭔가 마음이 불편해지면 내일은 점집에 전화를 건다. 신점을 보는 무당은 또 싫어하기 때문에 철학관 또는 스님의 형태를 취하지만 사주팔자 상담이 주업인 곳에 전화를 건다. 내가 짜증 나는 건 그런 곳의 이름은 꼭 '절 사'로 끝난다. ㅇㅇ사 이런 식으로.내가 불교라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무당도 불교냐 라는 질문이다.
주로 점집에 전화를 거는 사이클이 월 1회 정도 매월 20일~25일 사이였는데 어엿한(?) 월급쟁이가 된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쯤엄마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아빠 월급날을 앞두고 가장 돈이 떨어졌던 시기여서 그랬을 것이다.돈이 떨어지면 월급이 생각나고 월급이 떨어지면 아빠가 좋게 보이지 않고 아빠를 보면 십수 년 전부터 아득한 빚의 역사가 떠오르고 그 역사를 떨치기엔 아직도 빚잔치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 여전히 비꼬는 건 아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사람의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여러 논리가 합해져 있는데 그게 합쳐지면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가령,
과거에 내가 무슨 사고를 치면 아빠를 닮아 흐리멍텅 (엄마용어: 띨띨하다와 비슷한 뜻)하고 그 이유는 전생의 업이 많아서라는 논리다. 화풀이인 줄 알고 그냥 듣고 넘기려다가 화나는 감정 가지고 세 시간 넘게 계속 말하길래 어느 날은 책상에 앉아 스프링 노트를 펼치고 분석해봤다. 지금도 엄마가 계속 화를 내며 추가적으로 일장연설을 하는데 뭐라는지 귀에 안 들어온다. 지금 적고 있는 말을 분석하는 게 수학의 정석 단원 끝 연습문제 푸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니년도 니 아빠 닮아서 눈은 흐리멍텅 해가지고..으휴! 니 아빠랑 셋트야 셋트. 니년도 전생에 업이 많아서 그래. 그렇게 누워있을 시간 있으면 절에 가서 108배나 하고 와 이년아!"
= 아빠를 닮아 (너도 니 아빠랑 똑같이 별로야!)
= 흐리멍텅 (차마 자식에게 띨띨하다고 할 순 없어 순화한 용어. 하지만 띨띨함을 표정으로 표현함)
= 셋트야 셋트 (니 아빠도 싫지만 너도 닮아서 싫어)
= 전생 업이 많아서 (내가 태어나기 전 전생을 나는 모르니 이해불가. 해석실패.)
= 누워있을 시간 있으면 ( 자기는 맨날 누워있으면서 지금도 누워있으면서...)
= 절에 가서 108배나 하고 와!(엄마방식의 포교인가? 포교를 이렇게 성질내면서 해도 되는 건가?)
여기서 가장 안 풀리는 부분은 '전생 업'이라는 부분이다. 현실에서 내가 한 일이 아니고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 전생에 내가 그랬다고 하면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살라는 건지, 전생업이 사실이면 내 인생은 이미 정해진 건가? 계속 퀘스천 마크가 붙는다. (전생업의 개념을 보통의 사람에게 이해시키려면 아주 간략하면서도 논리적이야 하는데 그걸 내가 지금 경전을 다 찾아보기엔 무리가 있다. 선뜻 생각해서는 이해불가다. 이해하려 할수록 '전생업 때문'이라는 말자체가 뭔가 억울하고 손해 보는 느낌이다.)
노트에 적힌 문장들을 지우고 다시 쓰고 이것저것 끼적이다 보면 머릿속처럼 지저분해진다. 따라서 분석하려던 이 한 문장에 대해
결론 없음. 논리 없음. 논리가 엄마한테는 있을 텐데 내게는 그냥 무논리, 무과학임. 그냥 엄마가 내게 화풀이한 걸로 끝.
이후 심기불편함과 두려움이 합해지면 엄마는 아까 말한 철학관 같은 곳에 전화를 한다. 간혹 그런 곳인지 모르게 상호명을 멋지게 지어놓은 곳도 있다. (미래 연구소라는 형식으로...) 아무튼 전화를 하면 곧바로 답을 해준다.
"이 냥반 돈지랄, 속 썩이는 거 이거 언제 멈춰요?" (같이 살기 싫을 정도로 싫다는 감정, 정신 차리지 못할 것 같다는 푸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쪽에서는 뭐라 중얼중얼하며 시간이 몇 초 정도 흐른다.
곧이어,
" 53세까지. "라고 답했다.
엄마가 나한테 말한 건 아닌데, 전화기 밖으로 들렸다.
엄마의 질문과 그 사람의 대화의 뉘앙스를 볼 때 약간 갈라서야 할 시기를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아, 53세면 한 4년 정도 남았다. 나는 마음으로 준비해 본다. 4년 후면 나는 26세고 그 나이면 엄마아빠가 갈라서더라도 내가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잠깐 가정법원 앞에 둘이 나와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슬프진 않다. 부부싸움의 역사를 딸이 대필한다면 상, 중, 하 한 질로 일필휘지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이혼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며, 그때 되면 나도 돈을 벌고 있을 테니 내 입장에서 두 사람에게 재정적 의지는 하지 않을 것이며, 양육이 필요한 나이도 아니니 괜찮다.
물론 이 모든 일과 상상은 아빠가 일하러 나간 사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 웃기다. 당사자 두명중 한 명이 없는데 이미 내 머릿속엔 이혼한 부부, 부모를 상상하고 있다. 나는 엄마아빠의 이혼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만큼 컸다. 엄청 대성통곡할 만큼 슬프지는 않은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아, 53세면 아빠가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고 나도 취업을 했으니 쥐꼬리 같은 돈이라도 아빠의 빚을 갚을 수도 있고.. 그쯤 되면 우리 집이 좀 안정되려나? 두 사람이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꿈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