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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27. 2021

철이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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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함께 일했던 디제이가 ‘철이 든다는 건 계절을 안다’는 의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뭔 소리냐는 얼굴이었을까, 짐짓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을까. 어쨌거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늙었고,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으며,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고여있다. 왜 하필 지금 그 말이 떠올랐을까? 생각의 줄기를 쫓아가 보니 요 며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 듯하다. 한 겨울도 그렇다고 봄도 아닌, 애매한 계절을 살 때마다 왜 가슴속이 텅 빈 공갈빵 같아지는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럼 너는 대답하지 않는 것 또한 대답이라고 말해주려나. 그럼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어디에 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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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 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다짐할 때마다 늘 다짐에 실패한다. 누군가는 그것이 간절함의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세상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무력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넘어져 있는 내가 보기 밉지만, 원하는 만큼 넘어져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반대편의 자아도 필요한 것이다. 나는 오늘 넘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자아를 택했다. 다짐과의 만남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후회’로 살아간다고 말할 것이다. 그때 입을 열지 말걸, 그때 전화하지 말 걸, 그때 떠나가도록 둘 걸, 그때 조금만 더 참아볼 걸,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앞을 내다본다. 좀 더 낫게 실패하고 싶어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 되감기와 재생 버튼을 몇 번이고 반복해 누르다 보면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할 테니까.




걱정거리 딸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빠는 내게 피부 관리도 받고, 가고 싶은 데 가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라고 하는데 - 그래서 나도 그래 볼까 하고 밝게 대답하곤 하는데, 정작 해야 할 말을 서로 못 하고 있다. 괜히 시선을 둘 데가 없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아빠 손을 쳐다봤다가, 하얗게 터버린 손끝에서 그만 또 무너져 버렸다. 피부 관리는 무슨, 당신 핸드크림이나 잘 바르고 다니지.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 주먹을 꽉 쥐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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