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스트레스 관리의 감을 잡다
<최강야구>를 보다 보면 응원가로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종종 나오곤 했다.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내 10대의 추억을 벅찬 감동으로 승화시키고 있을 때 큰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물론 다가와도 옆에 앉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가와 우두커니 TV를 봤다.
근래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만 관찰해 보니 노래에 관심이 있는 거였다.
"너 저 노래 아니?"
"네"
"어떻게?"
"학교에서 자주 나와요."
"엄마 중학교 때 노랜데 신기하네. 저거 신해철 노랜데, 너 신해철이 누군지 알아?"
"네"
모처럼 내 근처로 다가온 아들에게 궁금한 것은 무척 많았지만 이건 뭐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대답은 나의 질문이 무색할 만큼 되게 되게 간결했다.
깜빡 잊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이 녀석은 두 마디 이상 입 밖에 내지 않는 걸.
그 후로 큰 아이를 살펴보니 계속 신해철 노래를 듣는 눈치였다.
샤워할 때도 틀어 놓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신해철의 노래에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이거다 싶었다.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볼 건수를 잡았다는 느낌상의 느낌!
내 인생의 멘토였던 신해철 님이 내게 아이에게 다가갈 기회와 더불어 우월함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구나. 야호! 큰아이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인심 쓰듯 말했다.
"노래 다운로드하게 해 줄까? 엄마가 쓰는 OO에 가면 다운받아 놓은 것 있어. 아이디 가르쳐 줘?"
으쓱거리며 큰 선심이라도 쓰듯 아이디를 불러주고 서비스로 마음에 드는 몇 곡쯤도 구입할 수 있게 결제도 해줬다. 큰아이는 엄마 아이디로 음악을 다운로드하면서 비자발적으로 엄마의 음악 취향을 알게 되었으리라. 덩달아 나도 큰아이의 음악 취향을 파악해 갔다.
복고, 레트로, 올드머니... 이런 거 정말 대환영이다. 돌고 도는 유행 이런 거 정말 좋다.
이런 분위기 덕에 내가 어린 시절 들었던 노래가 다시 유행이 되고 덕분에 큰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라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의 유행이 따로 있었다면 그것을 공부하는 것에도 꽤나 고생했을 게 뻔하다.
아이와 친해지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한데 그 사전 작업이 취향 파악이기 때문이다.
멀어지는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성격의 내가 아니기에 배우느라 아마 골머리 좀 썩었을게 분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계를 다루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하는 게 나의 취미 중 하나였는데 나이가 드니 하... '세상 귀찮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기계는 단순한 게 짱. 성능 많이 필요 없음. 어차피 쓰는 기능만 쓰니까. 기능이 단순한 게 고장도 없음. 대충 쓰는 방식도 간단하니 배울 필요도 없고. 있는 기능만 써도 다 못쓰고 죽는다니까.
이 정도가 나의 요즘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건 거저먹기 아닌가. 내 젊은 시절, 신해철에 심취해서 모든 곡을 통달했던 나에게 쌍따봉을 날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들 시험이 끝난 후 스트레스를 풀어줄 겸 격려도 해줄 겸 가족이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갑자기 노래방에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좋아하려나 의견을 물으니 두 아이 모두 순순히 따라왔다. 것도 흔쾌히.
알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코인노래방도 가지만, 시간이 있으면 가끔은 노래방도 간다고 했다.
그날 노래방에서 두 아이의 노래 취향을 알아버렸다. 큰아이는 확실히 신해철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고 있었고 더불어 성시경 노래 심지어 쿨의 노래까지 알고 있었다.(와... 내 친구인 줄!)
아빠와 큰아이는 마이크를 들고 춤까지 춰가며 열정적인 콘서트를 했다. 큰아이가 아는 모든 노래는 남편도 나도 모두 아는 노래였다. 그러니 더욱 열정적일 수밖에. 더불어 나도 뛰어들어 잘 추지도 못하는 춤에 동참했다. 신나는 노래는 흔들며 불러야 제맛이 아닌가. 점점 신이 오른 우리는 목이 쉴 때까지 달렸다.
큰아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지, 춤은 또 얼마나 잘 추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둘째는 아직은 수줍은 중2였다. 조용조용(목소리가 모래 한 스푼 섞인 상태라 음이 안 올라가는 것도 있다) 최신곡 위주의 발라드 노래를 한두 곡 부르는 것에 그쳤다.
큰아이는 판을 깔아주면 달려들어 적극적으로 즐기는 스타일이었고 작은 아이는 판을 깔든 말든 자신이 부르고 싶어야 부르는 마이웨이 스타일이랄까. 이날 파악한 두 아이의 성향은 이랬다.
같이 대동단결하여 논 것은 정말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었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이날 제일 먼저 뻗은 것은 남편과 나였다. 노래방 시간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빛에 엄마아빠가 체력이 달린다 죽을 것 같다며 감정에 호소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몸이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긴 대학 때도 안 추던 춤을 춰댔으니 괜찮을 리가.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의 방문이 닫히고 날 보는 아이의 눈빛이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을 느낄 때 얼마나 쓸쓸해졌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어느 날은 적대적이기까지 하더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보는 건지.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계획한 외식과 노래방이었는데 내가 얻은 것은 그 이상이었다.
잠시나마 예전과 같은 아이의 따뜻한 눈빛을 보았고 자신이 아는 모든 노래를 알고 있는 엄마에 놀라며 은근히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공감대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방황하던 어린 시절 내 멘토였던 신해철 님은 이렇게 나를 위기에서 또 한 번 구했다.
이쯤 되면 내 인생의 구원투수가 확실한 듯하다.
아이들의 따뜻한 눈빛과 말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춘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이라도 아니 한순간이라도 감사하다. 이렇게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으니.
아이는 힘들 때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릴 것이고 이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 요즘도 아이의 귀에는 자주 이어폰이 끼워져 있고, 내 아이디로 음악을 다운로드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