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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Jul 20. 2024

나한테 말 걸지 마

아들, 소주 두 병드신 상태냐

아이들은 할 일이 많다. 그래서 거의 늦은 시각까지 깨어 있곤 한다.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 웬만하면 같이 있어주자는 주의라 오늘도 나는 거실에서 아이들은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얼마 후 작은 아이가 방에서 나온다. 무슨 일인가 바라보니 불량한 눈빛을 보내며 부엌으로 향한다. 자신은 물 마시러 나왔을 뿐인데 뭐 어쩔 거냐 정도의 시선이 담겼다. 그러고는 탕탕 요란한 발걸음으로 물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간다. 이 밤늦은 시각에! 공동주택에서 저렇게 탕탕거리다니!


"OO야, 밤이 늦었잖아. 살살 걷자" 

 

대답은커녕 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는다. 

또 얼마 후 작은 아이가 어지간히 공부를 하기가 싫은지 또 화장실에 간다고 방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쿵쿵 거리길래 째려봤다. 


"살살 걸으라고"


아이는 날 빤히 바라보며 보란 듯이 더 탕탕 걸어갔다. 왜 이 녀석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걸까. 

이건 남자아이들의 특징인 건가? 아니면 사춘기의 반항심애서 나오는 특징인 걸까? 

아니면 그냥 우리 집 작은 아이가 또라이라 그런걸까?


"야! 안 들려!?"


결국 작은 아이는 나로 하여금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고야 만다. 

마치 '네가 이래도 날 안 때리고 참나 보자 ' 정도의 약 올림을 당하는 것 같달까.

초등학생일 당시 나의 질문에  '어쩔티비'와 '에베베' 같은 의성어 종류로 대답하며 나에게 깐족거리던 이 녀석은 어쩌면 나이가 들어도, 청소년이 되어도 변함이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름 성장해 가는 듯한 묵직한 느낌이 있었는데 작은 아이는 참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더 심하게 말하면 가끔은 얘가 사람이 될까 싶기도 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하지 말란 짓을 하는 저 녀석을 눈앞에 두고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여기서 지면 저 녀석한테 먹힐 텐데'

'정신줄 한번 놓고 잡아 봐?'


내 인상이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험악해졌었나 보다. 어느 순간 작은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엄마, 싸랑해요~" 


와...... 이게 진짜. 골고루 멕인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큰 아이도 마찬 가지다. 

어느 날 밤, 문 닫은 큰 아이의 방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한참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었다.

큰 아이의 방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일어나지 못하기에 다가가 흔들어 깨웠다. 불편하게 자지 말고 침대에서 편히 자라고. 

가까스로 눈을 뜬 큰아이는 갑자기 폭풍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자면 안 된다, 왜 지금에서야 깨웠냐, 아 더워 죽겠네, 왜 졸고 난리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등등

책장을 거칠게 넘기기도 하고 인상을 벅벅 쓰면서 나보고 당장 나가란다. 자기는 바쁘다고.

다음 날 큰아이는 아침도 안 먹고 지각한다며 나가버렸다. 

아이의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이내 너무 마른 큰아이가 굶고 나간 것이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었다. 


순간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때 했던 짓이 기억나버렸다. 

난 조금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으레 밥을 굶곤 했다. 또 왜 밥을 하루에 세끼나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고플 때 먹으면 되지 왜? 엄마는 계속 몇 번이나 밥 먹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매번 퉁명스럽게 싫다고 하고. 

밥 먹을 때 잠깐 엄마 얼굴 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 버렸구나.

우리 엄마 매번 속상하셨겠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 나란 인간 참.     


밤에 자율 학습까지 마치고 돌아온 큰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머뭇거리다 한마디를 내뱉는다. 


"엄마 제가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제 방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아니 사과를 했으면 나의 대답을 좀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저게 사과야 뭐야. 신종 멕이는 방법인가. 다시 열받는다. 차라리 말이나 말지. 더 혼란스럽다. 


중학교 선생인 친구가 전에 그랬었다. 사춘기 애들은 소주 두 병 마신 상태와 같다고. 

그러니 맞서 싸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못 들은 척, 못 본 척 피하라고. 

손님이다 생각하고 제삼자처럼 거리를 두고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장 현명한 거라고. 

말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뜻대로 되나.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저렇게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있는데. 

내 감정도 네 감정도 참 정리가 안된다. 계속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이건 해결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아니면 그냥 참고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인 걸까?

어쨌든 오늘의 답을 찾긴 했다. 오늘은 이걸로 정한다. 


"너희들 나한테 말 걸지 마."


소심하게 복수한다. 나도 마음 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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