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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Aug 10. 2024

끝없는 잠과 무기력

아들, 수면병에 걸리다

작은 아이에게 위기가 감지되었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지런쟁이, 작은아이가 근래 들어 피곤과 잠과 무기력에 잠식되어 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작은 아이가 아침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든 채로 졸고 있다.

FM라디오를 틀었다. 뇌를 깨우는 데는 음악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저러다 학교에 지각할까 싶어 깨워서 대충 먹이고 샤워하라고 화장실로 등 떠밀어 들여보냈다.

몇 번의 채근 끝에 아이는 무사히 씻고 나와 간신히 지각만 면하게 등교를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학교를 요즘 들어 거의 매일 간신히 지각 전 슬라이딩으로 등교 중이다.  


큰아이의 중1 겨울 방학 즈음이었다. 아이는 부쩍 피곤해하며 잠을 많이 자기 시작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러나 싶어 안쓰럽기도 했고 사춘기의 특성상 잠이 많아지는 것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한참 클 때니만큼 잘 먹고 잘 자면 되겠지 싶어 식단뿐 아니라 각종 영양제와 과일들까지 내 딴엔 최선을 다해 챙겨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잠은 갈수록 도를 더해갔다. 단순히 영양적인 문제나 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잘 먹이고 있고 충분히 잠을 잔 날에도 아이는 졸고 있었다. 점점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눈은 뜨고 있어도 초점이 풀린 듯 멍한 눈동자를 한 채로 가수면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의 학교 생활, 학원 생활 모두 적신호가 켜졌다.

아이도 걱정이고, 공부도 걱정이고, 나도 걱정이었다. 격려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혼내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아이의 무기력과 잠을 깨부수고 싶었다. 책상에서 약 먹은 병아리처럼 계속 졸고 있는 아이를 보거나, 아이의 듯한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마다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작은 반응조차 없었다. 그냥 무기력하게 늘어져 잠을 잘 뿐이었다.    

결국 큰아이는 두 달간의 겨울 방학을 날렸고, 모든 학원의 반 레벨이 하락됐으며, 특히 수학은 두 단계 강등 당하는 것으로 수면병이 마무리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학 때문에 고생하는 중이다.


큰아이와 같은 일이 다시 작은 아이에게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에게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조는 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말해 두었다.

많이 졸리니 낮에 숙제를 미리 하고 밤에 일찍 자도록 해보라고도 했다.

작은 아이는 본인도 잘 알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하지만 얘야, 엄마도 알고 있단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걸.


정해진 순서대로 학원에서 하나 둘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동일했다. 숙제가 미흡하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다, 등등.

작은 아이에게 지각을 하면 안 되고, 숙제는 반드시 해 가야 한다고 했다.

며칠 지나니 이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는다. 예상하던 그 내용들.

선생님은 작은 아이는 대놓고 자는 학생은 아니라고 했다. 본인도 미안해하고 창피해서, 졸지 않으려고 세수도 해보고 커피도 마셔보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안 졸려고 스스로 교실 뒤에 놓인 서서 수업 듣는 책상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하지만 서서도 존다고.

당연히 그렇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면병은 좋아하는 과목이든 아니든 상관도 없고, 어떤 시간대이든지 어떤 노력을 하든지 다 소용없었다. 미친 잠을 막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수면병은 오직 시간만이 약이었다. 문제는 얼마동안 지속되냐는 건데, 내가 알 수가 있나.

큰애 때 여기저기 알아보니 기간은 대중없었다. 너무나 개인차가 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 선생님들께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저희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고 변명도 해야 하고 태도도 숙제도 죄송하다고 집에서 지도해 보겠다고 열심히 사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에서 아이와 타협을 해야 한다. 당장은 공부가 문제가 아니니(할 수도 없고) 우선은 건강과 성장에 힘쓰면서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이 되었을 때 다시 학원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 권유해야 한다. 정신은 집 나가 있는데 몸만 학원에 가 있으면 뭐 하겠는가. 물론, 내가 자선 사업가도 아닌데 돈도 당연히 아깝다. 학원비가 얼마나 비싼데.


이러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큰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앉아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 가운데 혼자 뒤로 나가 서서 수업을 듣는 작은 아이가 눈에 보이는 듯했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평소에 커피는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성장에 방해된다고 금지했던 음료다. 나 몰래 커피를 마시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업에 집중은 안되고 그러니 당연히 숙제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을 테고 학원에선 선생님께 계속 지적을 당했을 거다. 아이는 그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런데 작은 아이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형편없는 사람이라 수업시간에 졸기나 하는 거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연락이 갈수록 내게 점점 더 미안해하는 중이었다.       

큰아이는 내게 성질을 부리기도 했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했다. 말 한마디로 내게 빚을 산처럼 쌓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너무나 다르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좋은 일도 그렇지만 나쁜 일은 더더욱 낌새도 비치지 않는다. 

나 같이 눈치코치가 별로인 사람에게는 엄청난 강적인 셈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번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아이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신 성적이 안 나오면 특목고를 안 가면 되고, 선행이야 조금 늦으면 어떤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을. 일단 정신부터 차리도록 기다려보고, 수면병이 지나가고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부터 열심히 달리면 되지.

그래, 누구 말마따나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봐야 회사원 되겠지...... 무슨 영화를 볼 거라고.

일단은 건강하게 잘 크는 데에 집중하도록 하자.

학원은 본인도 스트레스가 클 테고, 다른 학생이나 선생님께도 민폐가 될 테니 당분간 쉬는 걸로 하고.    

그렇게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며 모든 방안을 마련했다.   


작은 아이는 나의 제안과 걱정을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알아서 할게요."


자신이 노력을 해볼 테니 학원 끊지 말고 조금 기다려 달라는 얘기였다. 

학원 간다고 집을 나서는 작은 아이에게 준비했던 컵커피를 건네주었다. 아이는 오늘도 잠과 전쟁을 벌일 테니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커피를 마실 거면 죄책감 가지며 몰래 먹지 말고 좀 더 좋은 거 맛있는 거 마시라고 골라둔 커피였다. 아이가 커피를 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면서요?" 


이 녀석은 항상 사람을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게 만든다.

분명 이유도 있고 할 말도 있는데 하필 순발력이 없다.

순발력 없는 엄마는 오늘도 영 모양이 빠진다. 아오.

그래. 모양 좀 빠지면 어떻고 창피하면 좀 어떠하리.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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