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W Aug 17. 2024

농구에 미친 자

아들, 농구와 사랑에 빠지다

시각이 7시를 넘어가고 있다. 오늘 우리 집 저녁 식사는 7시.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공들고 나간 아들놈은 아직이다. 하여간 공만 들고나가면 정신이 나가는 듯하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믿어보고 싶어 허락해 주었건만 이놈이 또 내 뒤통수를 후린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초등 저학년에 반친구들끼리 축구팀을 꾸리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그 멤버들을 바탕으로 고학년이 되면 농구팀을 구성한다. 그렇게 운동을 배우고 나면 중고등 학교 시절에는 알아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취미로 즐긴다. 우리 집 큰아이는 대단히 활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귀찮고 별로라며 축구팀이나 농구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었다. 다만 운동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기에 학교 체육 위주의 활동을 할 뿐이었다. 


그랬던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농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검도 말고는 특별히 한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농구에 관심을 갖자, 남편은 매우 기뻐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가 농구화를 맞춰 사 신더니 직접 농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남편은 고등학교 때 농구를 좋아해서 자주 했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삼부자 모두 운동을 하게 되니 좋고, 농구 덕분에 셋의 친목도 도모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라 더욱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농구를 하고 있으면 시원한 음료수 셔틀을 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2대 2로 시합에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한 번씩 시합을 해주는 게 실력 향상에 꽤 도움이 됐다. 


삼부자는 집에서는 유튜브로 농구 동영상을 찾아보고 시뮬레이션을 하며 각종 동작과 폼을 연구했고, 시간 날 때마다 밖으로 몰려나가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습을 해보면서 실력을 향상해 나갔다. 

생각보다 꽤나 몰두 하기에 참 의외라 여기면서도 얼마나 가겠나,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했다.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이 방구석에서 게임하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다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일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큰아이는 농구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거의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농구만 생각하는 듯했다. 몰두가 과한 게 아닌가 걱정될 무렵, 큰아이는 결국 농구에 미친 자가 되었다. 큰아이는 공을 들고 등교했고 아이의 실내화 밑창은 닳아서 뚫어지기 일쑤였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신발 갈아 신는 시간도 아까워서 실내화를 신고 농구 경기를 하는 것은 물론, 점심시간엔 밥도 굶어가며 모든 시간을 농구에 올인했던 것이다. 아이의 머릿속엔 '농구'외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달이 일어났다. 학원에 간 큰아이가 돌아올 시각이 훨씬 지났음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사전에 연락 없이 늦거나 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이상하게 여겼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연결되지 않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각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고 더 이상 집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서 학원가로 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의 학원가는 학생들이 다 돌아가고 상점들도 문을 닫아 인적이 드물고 스산했다. 학원에 확인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모든 학생은 10시에 돌아갔다고 했다. 

평소 걱정과 불안이 높은 나는 온통 안 좋은 쪽으로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그때부터 거의 미친 사람처럼 학원가의 모든 피시방과 노래방 등 학생이 갈만한 모든 곳을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우리 아이는 없었다. 정신이 나갈 무렵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후에 남편이 말하길 내가 큰애가 없어졌다고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고 했다.   


'이제 어떡하나' 멍하게 학원가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 경찰차가 지나갔다. 아이에게 큰 사고가 생기기 전에 빨리 실종신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공원 농구장이 떠올랐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설마 공원에 갔을까 싶었지만 나의 촉은 강력하게 그쪽을 지목하고 있었다. 무슨 정신에 뛰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새 전속력으로 중앙공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결국, 큰아들 놈은 농구장에서 발견되었다. 신나게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를 찾았다는 안도감은 잠시 뿐,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농구장으로 뛰어 들어가 인정사정없이 아들놈을 패버리고 싶었지만, 그 순간에도 아들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서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한 후, 또렷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주변을 살피지 못해 근처에 서 있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고, 아이는 곧장 나의 뒤를 따랐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큰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나만큼이나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작은 아이는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빠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제 형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남편과 큰아이 사이에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작은 아이를 다독여 제 방으로 들여보내고 큰아이를 손에 닿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조용히 맞고만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때리는 나의 모습에 무척 당황했고, 내가 앓아눕는 것으로 그날의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큰아이였기 때문에 실망이 너무나 컸다. 반듯한 아이가, 모범생인 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간 아이와 눈을 맞추지도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큰아이는 몇 번이나 나에게 다가와 대화를 하자고 했지만 거부했다. 아이를 보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큰아이는 반성의 태도를 보이며 착실하게 생활을 해 나갔다. 어쨌든 사건의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큰아이를 불러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왜 말하지 않고 농구를 하러 갔냐는 것이었다. 학원 끝나고 친구들과 농구를 한두 시간 하고 와도 되냐고 사전에 허락을 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 말을 안 해서 부모를 걱정시키냐고, 왜.

아이의 입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나왔다. 


"엄마는 맨날 안된다고만 하잖아요!"

'맨날'??  '안된다고'?? 


대단히 훌륭한 엄마는 못돼도, 나름 오픈마인드에 소통을 잘하는 엄마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의외였다. 아이에 따르면 막히고 고집 세고 공부 밖에 모르는 엄마였다. 충격이었다. 

일단, 나의 충격은 차치하고 큰아이에게 앞으로는 미리 스케줄을 알리고 허락을 받을 것을 다짐시키고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 후로 아이의 그 말에 대해 계속 생각 중이다. 엄마는 맨날 안된다고만 한다니. 도대체 내가 언제? 왜?

왜 아이는 저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크게 느끼게 하는 건 아닌지 계속 나에게 질문하는 중이다. 어느 부분이 잘못 된 걸까?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지금도 아이의 농구 사랑과 더불어 공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요즘은 농구과 더불어 축구다.

농구를 하다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겨서 오랫동안 치료하기도 했고 손가락이 삐거나 부러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중학교 때처럼 일수 찍듯 정형외과를 다니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이는 다리를 다쳐 못쓰게 되면 친구들이 하는 농구나 축구경기의 구경을 했고, 오른손 손가락이 깁스상태면 왼손으로 농구를 하던가 축구를 했다. 

항상 농구가 우선이지만 불가피하게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공놀이로라도 에너지를 발산했다. 


아직도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농구에 집착할 수 있는지, 어떻게 농구만 시작하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싹 다 잊어버리는지, 몸도 분명 힘이 들어 지칠 텐데 적당히 멈추지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는지 정말 알수가 없다. 큰아이의 농구 사랑은 계절도 시간도 날씨도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확고하기만 하다.   


이번 일로 난 단념을 배웠고, 큰아이의 농구나 운동에 대한 이해는 포기했다.  

어떤 것도 공놀이에 미친 저 '도른 자'를 막을 수는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큰아이는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간임이 확실했고, 농구나 축구 같은 공놀이를 억지로 금한다면 병이 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학년이 올라가면서 할 일이 많고 시간이 없어서인지 반강제로 조절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항상 네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제발 남는 시간에 농구하라고 잔소리하는 편이다. 

(잔소리를 정말 안 하고 싶은데 아예 안 하는 것은 도대체가 되지를 않는다.) 

큰아이는 정신 차린 듯 제 할일을 하며 잘 지내다가도, 여전히 한 번씩 돌발행동으로 나를 기함하게 만든다. 

오늘도 저녁에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큰아이를 발견했다. 

스터디 카페에 간다고 나간 큰 아이가 공원 농구장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경기를 뛰고 있었다.

아이고 이놈아...... 차라리 걸리지나 말지. 

이럴 땐, 내 아이를 멀리서도 귀신 같이 알아보는 내 눈이 다 원망스럽다. 


잠시 운동을 멈추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아이의 경기를 지켜봤다.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빛이 나는 얼굴과 반짝이는 눈빛. 안면 가득한 미소. 활기찬 몸놀림. 

요 몇 년간 나는 아들의 저런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저렇게나 좋을까.  


조용히 아이는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아이의 저 행복한 모습을 저장해 두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더 늙고 네가 더 큰 다음, 나중에 꺼내 보려고 한다. 

그때는 이 사진을 보면서 지금과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