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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Sep 07. 2024

아들과 정형외과

아들,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냐

"엄마......"


집에 돌아온 큰애가 왠지 애처로운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뒷머리가 오싹한 것이 느낌이 안 좋다.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큰아이가 왼손을 들어 보인다. 얼핏 봐도 가운데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경험상 저 모양이면 손가락이 부러진 게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큰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힘이 들어갔었나 보다. 다급한 아이의 말이 이어졌다.  


"농구 안 했어요, 축구도 안 하고 가만히 교실에만 있었는데......"

"교실에만 있었는데?"

"손을 뻗다가 부딪혀서...... 조금 꺾였어요."

"......"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신기하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손을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뻗으면 손가락이 부러질까?

그래 몇 달 쉬었으니 다시 다칠 때가 됐구나 싶었다. 그나마 왼손이라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평소엔 말도 없던 아이가 주저리주저리 변명이 길었다. 본인도 일말의 양심이 있기에 저렇게 열심히 변명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다 들어주기엔 시간이 없다. 병원 문 닫기 전에 빨리 수습해야 한다.  


"부러진 거 맞아. 당장 병원부터 가봐."

"아니... 알아서 할게요."

"당장!!"


병원에 가는 것도 사정해야 한다. 우리 집 남자들만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유독 병원 가는 것을 귀찮아하고 필요 없다 생각한다. 열이 펄펄 끓고 아파도 버텨서 나아 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하지만 자연치유도 정도껏 해야지, 뼈가 부러졌는데도 그냥 잠자면 나을 거라니 이 무슨 미련한 짓이란 말인가. 하여튼 병원 가라고 혀가 닳도록 얘기를 하다 내가 지칠 판이다. 어릴 때야 업어서 데려가거나 힘으로 억지로 들고라도 데려갔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고 말로 표정으로 협박하는 수밖에. 


"엄마랑 같이 갈래?"


내가 일어나 병원 갈 준비를 하자 아이는 급하게 병원에 간단다. 병원에 들렀다 학원을 가겠다고. 

언제부턴가 아이는 엄마와 같이 병원에 가지 않는다. 병원뿐만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철저하게 부모는 배제시킨다. 친구랑 가거나 혼자 가거나.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게 부끄러운 걸까? 싫은 걸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독립심 강한 아들 덕에, 난 아들의 몸 상태를 늘 의사 선생님께 전화로 전해 듣는다.  

특히,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과는 잊을만하면 통화를 해서 이대로 더 가다간 친구가 될지도 모를 지경이다. 

역시나, 손가락 뼈는 골절이 맞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작은 아이가 어릴 적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멋지게 뛰어내려 발목을 접질린 것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정형외과에 다니곤 했다. 정형외과에 갈 일이 없을 때엔 소아과 안과 피부과 병원에 갈 일이 생기곤 했으니 늘 끊임없이 어느 병원에는 다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는 놀며 배워야 된다는 주의라 초등학교 시절엔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저녁 먹을 때쯤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야외 활동이 많으니 당연히 부상도 많았다. 또래에 비해 심하게 발랄한 아이들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밖에서 놀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은 계속 됐다. 

하지만 해도 너무 했다. 아이들이 모여 피구를 하면 우리 아이만 손을 다쳤고, 검도 학원에 보내도, 태권도에 보내도 다른 집 아이들은 멀쩡하게 잘만 다니던데 우리 집 아이는 계속 다쳐왔다.  

초등학생이니까, 밖에서 많이 놀아서 그런 거라 여기며 중학생이 되어 활동 시간이 좀 줄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아이 모두 중학생이 되었고, 나의 바람대로 작은 아이는 부상을 끝냈지만 큰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아이의 성향 차이에 있었다. 작은 아이는 혼자 게임을 하거나하며 스트레스를 혼자 풀어내는 스타일이었고, 큰아이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었다. 친구들과 주로 운동을 하니 당연히 부상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과 너무 잦은 운동의 빈도,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향에 있었다. 큰아이는 지금까지도 신체부위 어딘가는 늘 부상인 상태로 치료 중이다. 



큰아이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큰아이가 다쳐서 보건실에서 일단 처치는 했지만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끝날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해 병원에 가라고 했더니 자기가 알아서 한단다. 이때 알아서 한다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유가 기가 막혔다. 친구 생일이라 생파를 해야 한다나 어떻다나. 

큰아이는 그냥 넘어져서 조금 까진 정도라 보건실 치료로 충분하다며 날 안심시키고 놀러 갈 궁리를 했다. 

하지만 가벼운 정도의 상처라면 선생님이 굳이 병원에 가보라는 문자를 내게 보냈을까?

큰아이를 간신히 설득해 학교 근처의 가까운 병원에 먼저 가서 치료를 받고 친구 생일 파티에 가서 놀다 오라고 정리했다. 물론 병원에 갔다는 확인 문자(병원계산서)가 엄마에게 도착하지 않으면 알아서 하라는 협박을 보탰다.   


밤에 집에 돌아온 큰아이는 과장을 좀 보태면 미라 같은 상태였다. 팔다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다친 건지 살이 드러날만한 모든 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찌 된 거냐 물으니 축구를 하다 슬라이딩을 했다고.

우리 아이는 넘어지는 순간에 얼굴만 들고 있었나 보다. 얼굴이라도 안 다쳤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헛웃음이 났다. 

다음날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를 갈아주려고 붕대를 풀다가 기함했다. 붕대 안에는 두꺼운 거즈들이 대어져 있었는데 살살 떼어내니 살은 움푹 파이고 까져서 벌건 속살들이 보이고 있었다. 팔도 다리도 무릎과 팔꿈치는 말할 것도 없고 성한 부분이 거의 없이... 진물과 피가 섞여 완전 피투성이였다. 

참담했다. 너무 속상하고 화도 나고... 기가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각이 서질 않았다.

어제 아이가 했던 별거 아니라는 둥 괜찮다는 둥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지경을 하고서도 친구랑 놀겠다고 병원을 안 간다고 한 거냐... 너는? 

집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아이를 다시 정형외과로 보냈다. 


한번 다치면 아파서라도 몸을 사릴만도 하건만, 이 아이는 바보인가 보다. 제 몸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바보.

누구나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 간다. 하지만 이 아이는 제 몸 챙기기에 관한 한, 학습 능력이 제로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지경이 되어서도 친구와 놀 생각을 할리가 없지 않을까.    

생살이 찢어져서 벌건 속살이 보이는 것을 보면 대단히 아팠을 텐데, 노는 데에 미치면 그 아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친구랑 같이 있으면 너무 좋아서 다른 생각은 나지도 않는 걸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뒷일을 생각 안 하고 일단 몸부터 던지고 보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 별생각 없이 그냥 놀기만 하면 좋은 건가?



오래전,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귀걸이를 하겠다고 귀를 뚫고 집에 돌아왔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빠가 화를 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발부 수지부모) 不敢毁傷 孝之始也(불감훼상 효지시야)

몸, 머리털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물론, 아빠한테 혼나고 쫓겨날 뻔하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냥 화를 내는 아빠가 너무 옛날 사고방식이라고 부당하다고, 내 행동의 정당함을 주장하기만 했었다. 그때는 참 억울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아빠가 왜 그러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회복된다. 하지만 부모의 가슴에 새겨진 놀람과 상처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반복된다고 해서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일도 아니다.   

아이 기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게 부모인데, 아이가 매번 제 몸을 소홀히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엄마노릇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엄마는 정말 극한 직업이다. 

아이가 내 마음을 다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몸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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