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최강'만을 좇다.
그 후, 학교 체육 분야에서는 내가 최강이 되었다. 줄넘기, 피구 같은 거야 늘 어릴 때 많이 해왔던 것이고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조금의 연습을 해두면 가뿐하게 잘난 척하며 1등이 될 수 있었다.
1등의 자리를 지키는 한, 남자 2, 3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수월하게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 1이 참전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더 이상 학교 체육으로는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눈높이를 높인 다른 게임들로 변화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농구와 볼링, 야구 등의 게임이었다. 평소 경쟁 관계였던 남자 1, 2, 3은 서로의 실력을 의심하면서 경기에 임했다. 남자 2, 3은 처음 접해보는 게임이었으므로 처음에는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었고, 나조차도 학교 체육 이외에는 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이렇다 할 실력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온갖 잡기에 능한 남자 1의 독무대가 되었다. 내가 야구에서 이 악물고 안타를 치면 남자 1은 홈런을 쳐 상품으로 과자를 받아(스크린 야구장의 경우 홈런에 상품이 걸려있다) 남자 2, 3에게 하사했고 존경을 받았다. 그때 나를 보던 남자 2, 3의 눈빛은 '너도 별거 아니었구나' 정도의 패자를 보는 조롱의 눈빛 같았다. 당연히 그들은 즉시, 남자 1의 추종자로 변절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No2의 자리는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 두 팀이 서바이벌 게임장(실내형)에 입장했다. 당연히 두 가족이니 가족대 가족의 승부라 생각했었다. 아니, 게임이 진행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총을 들어서 그런 건지 너무나 큰 기쁨에 흥분한 남자 1, 2, 3은 평소와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미친 듯이 총을 들고 실내 서바이벌을 뛰어다녔다. 물론 나도 이 나이에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뛰었다. 체력이 달려 힘에 부칠 때면 남편과 같이 의지하며 상대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협력하기도 했다. 이쯤 하면 스트레스도 풀렸겠고 기분 전환도 됐을 테고, 팀을 승리로 이끈 엄마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게임이 끝나고 전광판의 개인 점수를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흥분해서 뛰어다녔던 우리 가족이 당연히 승리를 했고, 개인 순위도 압도적이었다. 나만 빼고. 그중 남자 1은 2등과도 대단히 점수차가 크게 1등을 차지했고 아이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 내가 아닌 남자 1 이!
알고 보니 나랑 같이 총쏘러 다니던 와중에 틈틈이 나를 쏴 자기 점수를 채워나갔던 것이었다. 나의 눈치 없음도 문제지만, 레이저총이라 소리가 나지 않아 날 쏘는지 눈치챌 수 없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서방이 배신자일 줄이야. 총쏘기 게임을 통해서 남자 1은 남자 2, 3의 존경을 얻었지만, 마누라를 잃었다.
볼링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엔 잠시 존경을 받았으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나의 위치는 점차 내려갔다. 일단 공의 무게에서 비웃음을 샀고(아이들은 팔힘이 세져 점차 무거운 공을 선택했지만, 난 항상 6, 7파운드짜리를 오갔다), '한게임 더!'를 외치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줄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볼링은 두 게임째엔 볼링공을 든 팔이 달달 떨려와서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팔 힘이 점점 빠지는데 반해, 아이들은 팔뚝이 점점 두꺼워지고, 그와 비례해 팔힘 짱짱맨들이 되어 점점 더 무거운 공을 선택하고 힘으로 세게 돌려 쳐 버리니 이들의 볼링실력은 일취월장해 갔다.
결국, 게임이 계속될수록 남자 1의 승리는 거듭되었고, 남자 2, 3은 나보다는 남자 1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남자 2, 3도 성장하면서 도저히 힘으로 내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몰락이 본격화되었다.
점차 남자인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몸집이 되면서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돈독해지기만 했다. 남자 1, 2, 3은 같이 목욕탕에 가고 여행을 다니면서 친분을 확고히 다져갔다.
이때 내게 상처가 되었던 말이 있다.
"엄마, 남자들끼리 할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고민이 생기거나, 나와의 갈등이 생기면 남편이 개입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남편이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른 면도 있지만, 남편의 말에 따르면 남자들의 세계에선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으므로 여자인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은근히 나를 왕따 시킨다는 느낌에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쐐기를 박았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같은 성별이 아닌 것에서 오는 본질적인 다름이 아이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아들과 나 사이에 문이 백개가 있다면 마지막 하나의 문은 절대 열지 못하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괜찮다. 나만 부모도 아니고 남편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테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하지 않는가.
무사히 바르게 잘 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춘기를 맞이하며 또 한 번 변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는 몸의 성장만큼 정신적인 성장과 더불어 사고의 변화도 컸다.
우선,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다름과 엄마의 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엄마는 약하므로 도와줘야 되는 사람 정도로 인식이 변화된 듯하다. 아이들로부터 동정표를 받지만 사실이니,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의 힘과 체력을 따라잡을 수도 없다.
또한, 예전에 남자 2, 3이 '최강'에 집착해, 모든 말이 "걔 쎄??"로 시작 됐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센 것에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다른 면의 '셈'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알아가고 있다.
사소하게는 누가 어떤 브랜드의 비싼 운동화나 옷을 입었는가부터, 데리러 오는 부모님의 차가 무엇인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직업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직종 별 연봉이 얼마인지, 부모님이 어떤 직종에 있는지 직급과 직책이 어떤지도 궁금해한다. 더불어 브랜드에 눈을 뜨면서 명품이 무엇인지까지도 알아가고 있고, 어느 지역 집값이 비싼지 어느 동네가 잘 사는 부자 동네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살면서 모를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알아가게 될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이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그리고 많이 알게 된 후, 우리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 어떤 식의 판단을 내릴지, 자신의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도 무척 궁금하다.
아이들은 나름의 배움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 후, 그들은 궁금한 점들과 이해가 안 되는 점들을 질문할 것이다. 그들이 질문을 할 때,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들어주고 싶고, 어떤 식으로 생각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지 옳은 힌트를 주고 싶다. 더불어 아이들이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믿고 터놓을 수 있도록 신뢰감을 주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