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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Oct 05. 2024

엄마는 '도비'처럼

아들, 엄마의 사랑이 귀찮니?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몸져누웠다.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숙제를 하고 수행 평가 준비를 하고... 중간 고사, 기말 고사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너무 바쁘다. 그 와중에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아픈 게 당연하다.  


작은 아이도 형을 따라하고 있다.  너는 중2라 지금 내신으로 대학 가는 것도 아니고 꼭 A를 맞으려고, 백점 맞으려고 아등바등 할 필요는 없다고 하기도 대단히 애매하다. 말해도 들을 리 만무하지만, 제 딴엔 목표가 있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는데 부모란 사람이 도와주지는 못할 지언정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공부 잘한다고 반드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한다고 행복하게 산다는 보장도 없다는 걸 나는 알지만, 제 딴엔 잘해보고 싶어서 나름 잠까지 줄여가며 노력하는 건데 거기다 대고 '문제 하나 더 맞춰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러냐', '다 부질 없으니 건강이나 챙겨라' 할 수는 없다. 이럴때 엄마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작은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감기에 걸렸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학교를 며칠 동안 가지 못하는 지경이었는데,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감기약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감기약을 먹으면 졸려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중2가 되면서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쩍 여드름과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던 차였다. 조금 통통한 유아 체형이었던 아이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서 호리호리한 청년의 몸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키도 크고 살도 빠지니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식단조절을 했으므로 분명 몸에 무리가 갔을 텐데 공부를 한다고 잠까지 줄이니 몸이 버틸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감기약도 안 먹겠다니. 엄마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공부고 뭐고 뜨끈한 국에 밥 한 그릇 말아먹고 감기약 먹고 푹 자면 나을텐데한사코 거부한다.

말끝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면서 딱 봐도 '귀찮으니 꺼지세요.'의 메시지가 분명한 몸짓을 보인다. 

  

큰 아이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예민한 큰아이가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서 더더욱 예민의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신경을 곤두세워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니 입안에 혓바늘이 여러 개 돋았고, 그러니 먹을 때마다 더 성질을 피웠다. 어려서부터 유독 씹는 것을 싫어하던 아이였다. 가리는 음식도 많고, 같은 메뉴를 두 번 먹는 법도 없다. 커도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도 역시나 밥상 앞에서 오만상을 쓰면서 깨작깨작... 왜 그런지 안다. 알지만 정말 꼴 보기가 싫다. 내가 독약을 준 것도 아니고, 어쩌면 엄마가 정성스럽게 해준 음식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런식으로 먹을 수 있는지 볼수록 열불이 났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어 자리를 피했다. 

다른 식구들이 다 먹고 떠나고 혼자 남아 깨작깨작 먹고 있는 그 아이. 뭔 밥을 맨날 한 시간 넘게 먹는다. 


"그렇게 맛없냐. 좀 적극적으로 먹어 봐."

"딴 데로 가세요. 혼자 먹게 내버려 둬요, 쫌!"



밤마다 아이들에게 다음날 아침으로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본다. 기왕 먹는 거 먹고 싶은 것을 해주면 바쁘고 힘든 아침에 기분이라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주문을 받고 미리 재료를 준비해서 아침에 해주는데, 이날은 아이들 모두 우동을 주문했다. 큰아이는 어묵을 먹지 않으므로 유부 우동으로 결정, 미리 유부를 손질해 조려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음날 아침으로 만들어줬다. 


"엄마, 유부 맛이 이상해요. 남겨도 돼요?"



골골대는 아이들을 위해서 전복밥을 준비했다. 기력 회복을 위해서 전복을 듬뿍 넣고, 톳, 당근, 표고버섯까지 잘 씹을 필요 없게 다져서 넣었다. 시험 때만 되면 살이 쭉쭉 빠지는 아이들을 그냥 볼 수는 없었다. 집 앞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는 큰 아이에게 저녁준비가 됐으니 밥 먹으러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 나 전복밥 싫어요! 관심 좀 가지라고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에게 말하는 아이꼴을 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무슨 애가 중간이 없다. 좋으면 확 좋고, 싫으면 확 싫다. 감정 기복이 막... 미친놈 같다. 

내가 이렇게 욕먹을 만큼 나쁜 짓을 한 건가? 

아마 공부 스트레스가 나에게 온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더 내버려 두다가는 사람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공부고 안쓰러운 것은 안쓰러운 거지.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이기도 했고.


"야! 매끼 밥 하는 건 쉬운 줄 알아? 감사히 먹지는 못할 망정 패악질을 부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한 끼 굶어 안 죽어! 너도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마지막 말을 뱉고 나서 나도 놀랐다. 아, 이거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인데.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줄 건 밥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름 먹는 것에 신경을 썼다. 학원 사이에 먹는 부실한 음식들이나 간식들이 마음이 아파서, 그런 것들만 자주 먹어서 몸이 더 부실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집착적으로 음식을 해줬는지도 모른다. 특히 까탈스러운 큰 놈은 더. 매 끼니때마다 다른 음식으로 최대한 기호에 맞춰서, 시간에 맞춰서 해주려고 노력했다.  

작은 아이는 둥글둥글 국하나만 끓여 놓아도 밥 말아서 뚝딱 해치우곤 했었다. 복스럽게 먹기에 늘 기분이 좋았었다. 음식도 할 맛이 나고 보람도 느끼고. 투정도 없이 잘 먹어주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이 녀석도 살찐다며 칼로리를 따지고 양을 제한하며, 큰아이만큼 애를 먹이지는 않지만 골라먹기는 한다.  

두 녀석 다 너무 신경을 써줘서 오늘날 이 사단을 만들었나 보다. 결국은 나 때문이다. 그래, 사랑이 과했다. 


   





내 자식인데 당연히 사랑스럽고, 고생스럽게 노력하는 것을 보면 짠하기도 하다. 

뭐라도 더 해주고 싶고 할 수 있다면 고생을 덜어주거나 나눠지고 싶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중에 '재벌 2세'도 있다던데, 내가 재벌이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 아들로 태어난 것도 제 팔자인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은 접고 가능한 노력을 해야지.


하지만 과한 나의 사랑이 아이들과의 마찰을 만들고 있다. 사랑이 과해서 다가가면 갈수록 서로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문제가 발생했다. 내 기준에서 매우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매 순간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참지 못하고 내 성질이 드러날 때면 나의 밑바닥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면 한동안 나 스스로가 참 형편없이 여겨져서 괴롭다. 

아이와 나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미움과 상처를 남길 있는 존재다.  


우리 집 청소년들과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인 듯하다. 


"과유불급"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치 못함과 같다.


1. 사랑을 주되, 절대 티 나지 않게 원할 때만 주기 : 너무 해주니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고 이기적이다. 

2. 서포트는 과하지 않게 해 주기 : 너무 해주니 버르장머리가 없고, 부모를 ATM기계로 생각하는 것 같다.

3.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침범하지 않기 : 우리 애는 가까이 가면 물어요.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요정 도비가 떠올랐다. 숨어서 일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면 불려 나와 생각 따위는 필요 없이 할 일만 하고 사라지는 집요정, 일명 무임금 종신형 노예. 

언젠가 나도 "자유예요! "를 외치며 뛰쳐나가고 싶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부모의 자식 짝사랑은 종신형이기 때문이다.   

공원 산책 할 때 마주치는 귀여운 강아지들처럼 잎으로 내 자식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걸로 하자. 

잊지 말자, 내 새끼는 관상용이다. 가까이 가면 문다. 

멀리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만 한 채로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도와준다.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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