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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Oct 19. 2024

알아서 할게요

아들, 엄마의 말은 일단 거부한다

"알아서 할게요."


아이는 오늘도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요즘 아이는 입만 열면 알아서 한단다. 

'듣기 싫으니 엄마는 제발 꺼지라'는 말인걸 뻔히 알지만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 주도' 그래 좋다. 

모든 스케줄 관리부터 실천까지 모두 스스로 해보겠다는 말이렷다. 책임도 확실하게 지도록 하자.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제일 골치가 아픈 것이 학원 스케줄 짜기다. 과목별로 레벨에 맞는 반이 정해지면, 학교 마치는 시간을 기준으로 중요한 과목 순으로 날짜를 세팅하기 시작한다. 한 번에 맞춰지면 바랄 게 없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시간 조정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겨우, 최악은 다른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입학 테스트부터 시작이다. 입학테스트는 수업 시작 전, 한두 시간 정도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맞추는 것 또한 한 세월이다. 아들놈의 툴툴거림을 받아내 가며 학원 시간을 조정해서 학원과 학원시간 사이에 입학 테스트를 보러 보내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

 

허나, 두 번째 위기는 시험을 앞두고 발생한다. 시험대비가 시작되면 학교별로 맞춤 수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전부 재조정되는데 여기는 선택권이 아예 없다. 그냥 정해진 그 시간으로 무조건 가야만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학원과 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질 정도로 연강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기본 강의 시간 외에 선생님과 합의하에 보충 수업 시간도 따로 잡아놓아야 한다. 또한 보충 수업은 시간이 유동적이라 수시로 체크가 필요하다.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므로 시간 선택의 폭이 엄청나게 좁다. 다시 말해 시간표 짜기가 극악의 난이도다. 때에 따라서는 학원수강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아이가 알. 아. 서. 한단다. 이 귀찮고 복잡한 일을 알아서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도 매우 의심스러웠지만 더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므로.  


대단히 부담스럽고 귀찮고 복잡한 그 일을 안 해도 된다. 안 해도 된다. 안 해도 된다고......

분명 해방감이 들어야 하는데 뭔가 허전하다. 불안하기도 하고. 

두 아이 다 본인들 입으로 알아서 한다고 하니, 내겐 선택권이 없다. 

그래,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버려 두는 거다. 본인 인생 본인이 관리하고 책임져야지.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뒷감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더 이상 이 아이가 언제 무슨 스케줄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몇 시에 깨워줘야 하는지, 몇 시까지 밥을 준비해 줘야 하는지 식구별로 쫘악 정리를 해놓아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난데, 지금 그렇지 않아 몹시 불안하다. 난 갑작스럽게, 뭔가 예상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한다. 그것은 대단한 스트레스다. 가만히 있다가 벼락 맞는 기분이랄까. 


다행히 큰아이는 알아서 한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하면서 나에게 흠잡힐 일은 딱히 없었고, 물론 학교나 학원에서 연락 오는 일도 없었다. 혹시 차단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잠깐 했지만 속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 컸다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된 거야.  


하지만 작은 아이가 남았다. 보란 듯이 문 닫고 들어앉아 있는 그 아이.

그럼 그렇지.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작은 아이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숙제를 덜 해왔고, 재시험에 걸렸단다. 

처음에는 진짜 간단하게 조. 은. 말.로 알아서 한다고 했으면 신경 쓰라고 했다.

이 녀석의 가장 큰 문제는 과목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확실하다 데에 있었다. 스스로 질문도 의심도 너무 많다.  '이걸 왜 해야 하지?'에 한번 꽂히면 와... 무슨 말을 해도 대책이 없다. 

좋은 말로 하면 주관이 확실한 거고, 사실은 그냥 똥고집이 제대로인 거다.  

한 두 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 입에서도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작은 아이에게 책임도 못질 거 뭘 알아서 한다고 했냐며 몰아세웠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고요!"




작은 아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 나의 대전제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숙제'가 것이다.  


아이 ; 숙제는 필요한 부분만 하면 되는 것

나 ; 숙제는 반드시 해가야 하는 것


내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왔던 '숙제는 당연히 해가야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작은 아이는 보란 듯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협박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학원은 다녀야 겠는데 필요한 숙제만 하겠다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화가 치민다. 이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요즘 들어 아이들은 엄마의 말이면 일단 거부부터 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중2 둘째 아이(놈).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일단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엔 무조건 반발 및 발작 그리고 거부. 이게 코스다. 

또한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분명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말을, 확실하게는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다다다 서로의 방향을 향해 내뱉고 있을 뿐인 거다. 그러니 아이들은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말을 할 때마다 제대로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내가 같은 말을 여러 번 한다고 버럭 화를 낸다.  

내가 말할 때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흘려듣는 주제에, 아이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자신은 듣지 못했다고 되려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는 왜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겨?'

 '같은 말을 왜 또 해? 나 무시해?' 


매번 이아이는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미스터리이다. 



아침 식사를 하던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오늘 우산 가져가야 돼요??"

"아리아(SK 인공지능 서비스), 오늘 날씨 알려줘." 

"......"

"알아서 잘한다며 왜 물어? 잘 듣고 알아서 판단해."


아이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니 은근한 쾌감이 밀려왔다.  

아침마다 식구들이 식사를 할 때 그날의 날씨도 알려주고 우산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던가, 옷을 따뜻하게 입는 게 좋겠다던가 등의 말을 늘 해주곤 했었다. 언젠가부터 말만 하면 차단 아닌 차단을 당하곤 하자 말이 하기 싫어졌고, 사실은 조금 삐진 상태였다. 


요즘 인공지능 서비스 맘에 든다. 대화도하고, 기분에 따라 음악도 맞춤으로 들려주고... 내 생활에 활력소가 된달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도 쓰일 줄은 몰랐다. 

인공지능은 우리 집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완충제 그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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