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우리는 점점 멀어지나 봐
1. 손잡고 걷기
우리는 항상 손을 잡고 걸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걸음마가 서투르니 위험해서 넘어질까 꼭 잡고 걸었고,
조금 컸을 땐 도망가거나 갑자기 튀어 나갈까 봐 위험 방지 차원에서 강제로 손을 꽉 잡고 걸었다.
이후엔 더 이상 위험해질 상황은 없음에도 어딜 가든 손을 잡고 걸었다.
왜? 이전부터 우리는 항상 손을 잡고 걸었으니까 당연히.
하지만 어느 날 보니, 우리는 손을 잡지 않고 있었다.
같이 외출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나란히 걷게 되는 상황에서도 손은 잡지 않는다.
그냥 같은 방향으로 걸을 뿐.
2. 밥 먹기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식구들간에 서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혼밥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어서 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가 아주 당연해졌다.
어쩌다 시간이 맞아 가족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조금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족일지라도 상대방을 신경 쓰면서 식사를 하는 것은 혼자일 때보다 에너지 소모가 커 불편했고,
또한 식사시간 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것(주로 핸드폰을 보더라)을 하며 먹고 싶은 게 아이들이 바라는 바 인 듯 하다.
같이 외식을 하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시간이 안 맞아서란 이유가 가장 크지만, 갈수록 굳이 맞추려고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외출하기
우리 집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적인 편이라 주로 야외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 이 유로 틈만 나면 가족 모두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야외 활동을 하면서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하고 콧바람도 쐬고.
행복한 경험을 하는 시간엔 항상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집 원칙이다.
그래야 나중에 추억을 더듬을 때에 우리 가족 모두가 등장하지 않겠나.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가족과 함께 외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야외활동이나 여행의 기회가 많이 적어지기도 했지만, 사소하고 짧은 충동적인 외출조차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한다.
휴일 아침이면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함께 보러 가곤 했었다. 오락실 가고 영화 보고 밥 먹고... 소소한 이벤트였다. 하지만<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더 이상 함께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들의 취향에 맞춰 같이 볼 영화를 선택해 함께하곤 했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같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엄마아빠의 취향을 고려할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은 사촌을 만나게 되어 모처럼 에버랜드에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가고 싶다 요청했고 당연히 엄마들도 같이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엄마는 기사만 하고 카드를 주고 사라지는 거였다. 에버랜드에 입장하는 멤버는 남자애들 셋 뿐이었다. 아이들은 당연했지만 남겨진 엄마는 황당했다.
4. 거실 테이블에 모이기
우리 집 거실엔 6인용 테이블이 있다. 아이들 어려서부터 여기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이 함께 보냈다. 같이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정말 할 일이 없어 멍하게 있을 때에도 항상 이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자연히 상대의 얼굴이 보이고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있고 생각나는 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다 가지고 나와 거실테이블에 펼쳐 놓고 했고, 가족 모두 지나가며 한마디씩 하기도 하고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면서 계속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일상을 공유했었다.
지금은 나 혼자 남았다. 넓은 테이블을 나 혼자 쓰고 있다. 좋기도 싫기도 하다.
아이들은 가끔 시험 기간에 한 번씩 들른다. 엄마가 보여야 잠이 깬다고. 아무래도 욕인 것 같다.
5. 애정표현하기
우리 집은 스킨십이 많은 편이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의 집에서 자라, 다정한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었기에 내 아이에게는 꼭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줘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붙어있었고, 틈틈이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를 입에 달고 살며 서로 밀접하게 지내왔다.
항상 자기 전에는 '굿 나잇 뽀뽀'인사를 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사랑해'하며 서로 한 번씩 안아주고 토닥토닥해 주고 '잘 자'라고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고. 당연했던 그 일이 어느 날부턴가 사라졌다. 컸으니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든다.
남편의 경우 너무 서운한 나머지 자신의 생일 선물을 묻는 아이들에게 매일 '굿 나잇 뽀뽀'를 해달라고 억지를 쓰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승낙했지만, 그것도 간신히 몇 달 지속된 후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귀가 답답하다 싶으면 나에게 와 귀를 파달라며 무릎에 눕곤 했었다. 꼭 귀가 답답해서라기보다는 어리광을 피우고 싶거나, 속상해서 마음이 별로 안 좋을때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름 힐링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추억일 뿐이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점점 '우리'에서 '나'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너희들은 완벽하게 독립하는 날이 오겠지
나도 아이들로부터 독립을 준비해야 하고 그 또한 그렇게 될 거다.
그게 자연의 이치인데 마음 한편이 참 쓸쓸하다.
시간은 흘러가고 너희는 멀어지고 나만 혼자 남게 되는 것.
우리는 사춘기를 보내며 그 과정을 겪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