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목줄을 더 쎄게 챘어야 됐는데]
그 날의 기억은 편집샵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했다. 친구들과 오랫만에 술 한잔을 하고, 구경할겸 들어갔던 편집샵에서 체인 형태 팔찌를 한번 걸어봤다. 내 취향도 아니였고 살 생각도 없었지만 술김에 안하던 짓을 했지 싶다. 아', 괜히 걸었다.' 체인 팔찌를 걸자마자 순간 체인 형태의 줄을 힘껏 당기고 순간 눈을 질끈감던 개의 표정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 체인 팔찌는 초크체인(개가 당기면 목이 조이는 방식의 훈련 도구)과 똑같은 원리로 생기고 재질도 똑같은 크롬 도금으로 보였다. 한 번 생각난 그 시절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과거로 향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기억나는 것은 왜일까. 내 기억의 시작은 군복무 시절로 향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시위 관리를 하는 의무 경찰 기동대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 서울 광화문은 분노, 슬픔, 절망으로 가득 뒤섞여있었다. 우리 부대는 시위대들과 코앞에서 대치하며 시위 관리를 했다. 방패를 들고 서있는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침도 맞고, 죽창으로도 찔리며, 부모님 욕도 먹곤 했다. 젊은 나이에 그저 나라에서 시키는대로 해야했던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밥먹는 것도, 쉬는 것도 모두 경찰 기동버스 의자에서 해야했다. 기동버스 특성상 창문을 열 수가 없어 그런지 더욱 숨 못쉬는 분위기를 짙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출동 때 가방에 챙겼던 개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한 A4 용지 프린트 자료와 노트, 동영상 재생기인 PMP. 그것들로 나는 숨을 쉬었다.
주로 외국 자료들을 번역해서 보았고, 모르는 것은 영문학과 나온 대원들에게 물어가며 보았다. 수 많은 시위 속에서도 나는 상상 속으로 많은 개들을 만났다. 그 때 깨달은것은 내가 하고 싶은 교육 방식은 유럽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유럽에도 여러 방식이 있지만, 개를 존중하는 교육이 많았다. 그들은 훈련사라기보단 교육자, 선생님 같은 느낌이 참 포근했다. 일방적이지 않고, 연민이 가득한 사랑이 아니라 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사랑이었다. 제압, 체벌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했으며, 도구에 관해서도 기존에 통제형 훈련 도구들을 비판하는 훈련사가 많았다. '이거다.' 자료들을 보면 짜릿했다. 내 멋대로 말을 듣게하기보다 개들을 존중하고 싶었고, 난 그런 훈련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훈련사라는 직업은 글, 영상을 수백편을 보는 것만큼 실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그 이전에도 많은 개에 대한 경험을 하면서 잘 알고 있었다. 전역을 얼마 앞두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고, 최대한 유럽 교육 스타일에 맞는 업체를 찾았다. 그런 훈련소는 사실상 없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우선 근무를 하자였다. 설령 별로여도 그것 또한 경험이란 생각이었다. 드디어 난 전역을 했고, 실내 애견 훈련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수습 시간에는 30만원 남짓의 용돈 수준의 돈, 근무 시간은 12시간. 주 1회 휴무. 다른 직업이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겠지만, 그곳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믿었다.
출근 첫 날, 대표님께서는 흰머리가 쉽게 보이는 중년의 여성분이셨다. 몸이 마르시고 왜소하셨는데, 어쩐지 항상 피곤해하셨다. 대표님께선 훈련소에 입소해있던 웰시코기의 목줄을 쥐어주며 가볍게 먼저 걸어보라고 하셨다. 개 자체는 많이 다뤄본 것 같다며, 여기서 배우면 금방 늘것이라고 칭찬 해주셨다. 왠지 으쓱해서 12시간 이후에 추가 근무까지 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첫 날은 근무보단 훈련소의 하루를 팀장님을 따라다니며 보고 배우라고 말씀 해주셨다. 팀장님은 내 또래 되는 평범한 여자분이셨는데, 축 쳐져 있는 어깨가 왠지 믿음이 가진 않았다. 어쩐지 열정이 없고 기계적인 느낌이었고, 오로지 쉬는 시간에 핸드폰으로 애니팡 게임 할 때만 눈에 빛이 났다. 시설 소개를 하며 팀장님께서는 훈련소에 입소하는 개들이 있다는 곳을 보여줬다. 문을 여는 순간 개들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5평 남짓한 공간에 20마리가 켄넬에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모두 쉴 때는 켄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개들이 많기도 하고, 개들은 집중력이 짧다보니 정작 훈련하는 시간은 훈련소에서 그렇게 길진 않다고 했다. 마침 오늘 레오라는 허스키 산책 훈련을 나가는데 같이 나가보자고 하셨다. 20마리들 사이에서 레오만 꺼내주니 다른 개들이 끙끙대고 혼비백산 했다. 레오는 은빛 색상에 파란눈을 가진 힘이 넘치는 잘생긴 3살 허스키 수컷이었다. 드디어 근무하는 곳에 교육 스타일을 처음 볼 수 있는 순간이 온것이다. 팀장님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자연스레 초크체인을 꺼내와 레오에게 채웠다.
그렇게 셋은 같이 인근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레오의 흥분은 좀처럼 식지 않은 따끈따끈한 상태였다. 레오는 다른 개를 보면 반응하는 고민을 가졌다고 했다. 산책을 나와 레오가 앞섰다. '챡!' 순간 깜짝 놀랐다. 초크체인을 스냅으로 챈것이다. 레오의 신나보였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앞설 때마다 채는 것을 반복하니 이내 옆에 걸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틀릴 때도 있다. 나온지 얼마 안되어 작은 공원의 적막을 깨는 말티즈가 한마리 등장했다. 목소리가 까랑까랑한 것이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말티즈는 골목 대장인듯 했다. 레오를 보자 발까지 동동굴러가며 짖어댔다. "맞짱 한번 뜰텨?"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티즈를 본 레오는 점점 흥분하더니 짖음이 입밖으로 세어나오기 시작했다. '챡!' 그 순간 팀장님은 능숙하게 초크체인을 챘다. 챡 소리가 7번 나고 나서야 레오의 짖음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3번쯤 챘을 때 나즈막히 팀장님은 '이씨'라고 하는 것들 들었다. 팀장님도 불안해보였다. 산책아닌 산책을 하고 다시 훈련소로 들어왔다. "어때요? 좀 놀랬죠? 저도 처음에 그랬는데 이렇게 해야 교정돼요." 내가 보기엔 팀장님과 레오가 더 놀래보였는데, 그걸 숨기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 "아, 그렇군요"라고 맞장구 쳤다. 그 이후로 팀장님은 훈련 방법들에 대해 알려주셨고, 초크체인은 그 가운데 필수였다. 초크체인 착용 시키는 방법, 채는 방법에 대해 전수해줬다. 평소엔 느슨한 느낌을 주며 걸어야 하고 챌 때는 순간 더 느슨하게 만들고 스냅을 주어야 개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친해지면서 내가 알게된 이야기는 팀장님도 이런 훈련을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렇게 한다고 했다. 그녀의 기계적인 눈빛도 학습된 것이지 싶었다. 그렇게 기동 버스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내 철학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옅은 베이지색에 동그란 눈, 항상 꼬리를 떨어질듯 치는 도담이라는 1살 코카스파니엘에게 처음 초크체인을 걸었다. 초크체인을 걸면서 "미안해"라고 속으로 말하고, 풀어줄 때 "미안해" 말했다. 그랬던 나는 적응이라 해야할지, 채념이라 해야할지, 시간이 지나자 미안해를 하지 않게 됐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일과, 훈련을 하며 "여기선 이게 최선이야. 여기선 이럴 수 밖에 없어"라고 주입했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처음 봤을 때, 팀장님과 다름 없는 영혼없는 기계적인 훈련사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담당견으로 국내에서 희귀한 뉴펀들랜드라 종인 깜지를 맡았다. 이 개들은 수상구조견으로 유명하여 수영을 잘하고 까만 털에 다 크면 50-70kg까지 육박하는 초대형견이다. 깜지는 8개월 남짓된 아직 강아지였지만, 몸무게는 50kg에 육박했다. 눈도 까매서 무슨 표정인지도 잘 알 수 없을정도였다. 깜지의 주된 고민은 평소에 흥분을 자주하고 산책 나갈 때 줄을 끄는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해맑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예 백지인 깜지는 내가 써내려가는대로 기억할 개였다. 나는 깜지에게 밥을 주고 빗질을 해주며 기본적인 친화를 거친 다음 초크체인 기본 적응 훈련부터 시켰다. 문제는 그날이었다.
실내 훈련장은 4층 옥상. 깜지랑 보행 훈련을 하고 있는데, 까마귀 한마리가 실내 훈련장에 와서 착지했다. 순간 깜지는 이성을 잃고 까마귀에게 돌진하려 했고, 나도 놀래서 평소보다 있는 힘을 다해 초크체인을 챘다. 깜지는 순간 깽! 하는 소리를 내고 그 자리에서 대소변 약간을 보았다. 생각 없어보이던 깜지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이 보였다. 흰자위가 시뻘개져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생각 났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를 했다. 그 날 이후 몇일 간은 깜지가 초크체인을 무서워하는 것 같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깜지는 초크체인에 무뎌져버렸다. 처음엔 1의 강도로 줘도 알아듣던 깜지는 나중에 강도를 점점 높여도 듣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진전은 없었고, 초크체인을 챌 때 느껴지는 깜지의 피부가 끔찍하고 싫어졌다. 깜지는 내게 커다란 숙제가 됐고, 그것을 해결하려 영상으로 기록을 하고 내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영상 속엔 깜지는 별다른걸 안하고 있는데 초크체인을 채려고 준비중인 내 모습, 초크체인을 챌 때 중간 중간 부정적인 감정을 넣는 내 모습, 무표정으로 굳어진 내 모습이 녹화 되있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보이면 바로 꺼버리는 훈련사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깜지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깜지는 아직 1살도 안된 강아지다. 에너지가 한참 넘칠 때이다. 개들은 태도와 분위기를 읽는 귀신이다. 내가 깜지에게 먼저 차분한 태도로 대하고, 먼저 실내 운동장에서 따로 부지런히 에너지를 풀어주고 산책 교육을 나가보자. 산책 나가서도 최대한 초크체인 채는 것을 줄여보고, 차분하게 내 옆에 걷거나 따를 때 칭찬하게 바꿔보자.]
물론 대표님과 팀장님 모르게 말이다. 그렇게 한달 조금 넘는 깜지와 새로운 시간. 2달반의 시간보다 깜지는 훨씬 발전했다. 내막을 모르는 팀장님은 "봐봐요, 초크체인 효과 좋죠?" 말했다. 깜지 보호자님께서는 그렇게 혼내도 안됐는데 차분해진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나는 보호자님께 교육 방법 다 까먹으셔도 '차분한 태도' 이거 하나는 꼭 기억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깜지는 제법 의젓해진 모습으로 퇴소를 했고, 속으로 난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했다. 훈련소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초크체인 사용 자체보다 그 때 나의 마음가짐이 크다는 것. 통제하는 도구라는 설명을 듣고 생겨난 항상 통제해야겠다는 마음. 빨리 단순히 행동을 만들어서 졸업 시켜야겠다는 마음. 그 당시에 나의 마음이고 가치관이였다. 그러니, 말을 안들으면 "더 쎄게 챘어야 됐는데" 라는 생각들로 가득찼다. 교육을 하며 느낀것은 사람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대부분은 감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개들은 빨대처럼 흡수한다. 통제를 하는 도구를 손에 쥐면 마음도 그 도구를 꽉 쥔다. 개를 바라볼 때, 누르고 제압해야하는 대상으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물든다. 그런 대상에게 여유와 따뜻함을 주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지금도 난 초크체인을 쓰는 훈련사들을 비판하진 않는다. 그것을 들고도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고 잘 쓴다면 그 또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깜지 이후로 초크체인을 들지 않았다. 깜지가 그러지 않고도 소통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으니까 말이다. 항상 해맑고 기분 좋고 엉뚱하여 백지 같았던 깜지. 깜지라는 백지에 처음 쓴 글들은 실수였지만, 다시 쓴 글들은 소통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만나는 개들에게 소통을 먼저 써주는 훈련사가 되고 싶다. 깜지가 내게 가르쳐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