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 없는 하루 속에서
‘너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다운 게 뭔지 생각하게 된다.
말투도, 행동도, 생각까지도
어떤 정해진 틀을 따라야만
'너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모든 것에 "왜?"라고 물었다.
내 질문에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니라
"왜 자꾸 묻느냐"는 또 다른 질문이었다.
그 순간 알게 됐다.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세상은,
그 질문조차 싫어한다는 걸.
나의 기준, 나에게 바라는 기준.
이 사이의 괴리감에 힘들어지는 건 결국 나 혼자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에게 바라는 기준'은 결국 나를 향한 기대인 척한 공격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너는 뭘 해도 잘할 거야.
너는 걱정 없지 않아?
너는 쿨해서 좋겠다.
내가 뭘 해도 잘할 거라니,
물론 듣는 당시의 기분은 좋지만,
그 기대를 채워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그 말을 오래 곱씹게 된다.
내가 걱정이 없다니,
오히려 나에게 걱정거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걱정할 게 없어서 이런 사소한 걱정들을 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쿨해서 좋겠다니,
그런 모습은 그냥,
나를, 그리고 너를 조금씩 포기하고 기준치를 낮추면 된다.
양가감정이 든다.
멋있어 보이는 이미지에 스스로도 취하는 나,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를 틀에 넣으려는 말엔
부정적인 감정만 올라온다.
만들어진 이미지대로 살고 싶다.
동시에, 반항하고 싶다.
그중에 나다운 건 무엇일까?
나는 정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 걸까.
그리고 어떤 나를 보여주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