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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 Feb 08. 2024

그리고 회고

갑작스러운 독립 소식에 아빠는 영문을 모른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모녀간의 비밀이야~'

장난스레 말하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늘 그랬듯이 별다른 질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일은 척척 진행됐다.

날 이후 자취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엄마는 제일 1순위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자 제안했다.

나는 그 길로 아르바이트하는 곳 주변의 자취방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연락해 가며 전세로 나온 집들을 알아보러 다녔다.

귀한 전세라는 말처럼 나와있는 전셋집은 얼마 없었기에 더 힘들게 알아보러 다녔다.

얼마 없는 매물들 중 안전하고, 깔끔하며 적당히 넓은 집을 찾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게 꽤 무리였지만,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즐거웠다.


내가 살 집이었다.

내 공간이 생기는 것이었다.


대학교 기숙사처럼 획일적인 인테리어도,

모텔처럼 차가운 공간도 아닌 그런 곳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보내고


부모님은 대학교 때와 다르게 짐을 꾸리는 걸 아무 말 없이 도와주셨다.




주청소를 끝내고 남은 짐을 챙기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엄마는 어느 대학병원 앞 벤치를 보고 잠깐 앉아서 쉬자며 날 잡아끌었다. 

'이제 네 공간이 생겼네? 그래서 이제 모든 게 해결됐어?'

당연히 모든 게 해결되진 않았다.

아직 내겐 남아있는 문제가 잔뜩이었다.


고개를 젓는 내게 '그럼 지금 문제가 뭔데?' 라며 물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숨을 고르 쉬고 그간 내게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봤다.


가장 트라우마가 컸던 도피성 취직으로 인한 실패,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확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너무 지나버린 시간 등등

나를 누르고 있는 것들은 막막한 미래에 대한 것들이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선택도 없고- 누구나 후회를 해, 네가 만약 대학교를 가지 않았다면, 그건 그대로 후회하고 있었을걸? 사람은 늘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안고 살아, 안 가봤으니까 당연하지.

네가 이렇게 뼈저리게 경험한 게 차라리 엄마는 괜찮다 싶어.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거잖아?"



에구구- 햇빛이 너무 눈부시다.

허리를 피며 내게 내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맑고 청량한 하늘에 구름 세 점이 동화같이 떠 있었다.


나는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내게 생겼다거나,

뭔가 각성을 해서 취업에 성공했다 하는 성공신화 스토리는 아쉽게도 아니다.


난 여전히 나약하고 생각이 많고, 쓸데없는 걱정들로 밤을 지새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버릇은 지독히도 고쳐지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입 꾹 닫고 혼자서 삭이는 버릇도 여전하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고민과 걱정은 평생 나와 동행할 것이다.

나약한 나는 여전히 두려워하며 밤을 지새우겠지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두려워한 건 생각보다 별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거대한 그림자 두려움에 떨며 혼자 잠들지 못하던 아이는

그 그림자가 고작 그림자에 몸을 키운 작은 벌레일 뿐이라고 알려줄 어른이, 가족이, 친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 어른을, 가족을, 친구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아마 걱정해야 하는 것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고자 노력하고, 그래도 안 되겠으면 도움을 청하는 것일 거야.



 

아 그리고 담배끊었다.

중독성이 강하기에,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던데,

자해로, 혐오의 명분으로 시작한 흡연이었기에 그 대상이 사라지자 시들해졌다.


아르바이트도 다시 시작했다.


난 그냥

조금 다른 길을 가보기로 했다.

쉬는 날 쉬지 못하고, 공휴일과 주말 상관없이 주 6일, 8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저 어린 날 용돈벌이로 잠깐 하다가 관두는 게 일반적인 직업이지만


잘하는 것이었다.

자신 있어하고 재밌어하는 것이었다.

일을 하면서 올라가는 자존감과 자신감은 과거 회사에서 받았던 트라우마에서 조금은 극복하게 도와줬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오래 서있는 게 허리도 무릎도 관절도 무리인 때가 오겠지.

친구들은 과장이다- 부장이다- 하며, 여태 아르바이트나 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하겠지.

연봉협상에 성공했다며 한턱 쏜다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할 것이다.

'너 그때 그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하지?'


후회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고 했다.

실제로 숱한 후회들을 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그래도 바꾸지 못하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에 목매달고 있기보단 앞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힘을 쏟기로 했다.


그러다 보 

언젠가는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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