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삶을 살기
암울한 연애사였지만 그중에서도 한 줌 사금처럼 빛나는 추억은 있다. 대학생 시절 '썸 타던' 사람과의 추억이다. 내가 춥다고 하면 집까지 걸어가 겉옷을 가져다주고, 내가 포장이 이쁘다며 샀던 양철 상자 속 사탕 맛에 인상을 찌푸리자 그 사람은 내 대신 그 사탕들을 먹어줬었다. 농담으로라도 맛있다 하기 힘든 사탕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내 설명 부족 때문에-결코 밀당 때문에 바쁘다 한 것이 아니었는데 성의 있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다고 오해하여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이 사람과의 만남이 있어서 나는 늦게나마, 사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온화한 품성이 좋았고, 행동이 빠르거나 크지 않아 함께 다니며 불안했던 적도 없다. 섭아, 네가 내 인생을 조금 바꿨어. 딱 세 번 만났는데 남의 인생을 조금 바꾸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거든. 니가 내 연애사의 귀인이었다.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 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었다. 있었던 것이다." - 허니와 클로버(2006)
남의 인생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썸을 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게다가 이 각박한 세상, 누군가를 사랑으로 건지겠노라 덤비다가는 상대 인생의 무게에 같이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은 씁쓸하고, 사랑이 난 자리는 차갑다. 그래도 때로는 본인조차 몰랐던 의미가 사랑 뒤에 남는다. 의미는 있다. 무언가가 들고 난 자리는 평소보다 시릴지언정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결론은 구해진 사람도, 구한 사람도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구원받은 인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정관계를 배워나가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지지는 않았어도 가야 할 방향을 알리는 신호는 놓치지 않았다. 이때부터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사랑받을 줄 알고, 또 따뜻한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즈음에는 이미 비혼주의로 마음을 먹어 가고 있었다. 누구든 내 학대 경험을 알고 나면 거기에 맞춰 나를 판단할 것 같았다. 결혼까지 할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내 행동에서 내 아버지를 발견한다면, 그걸로 나를 경멸하게 된다면. 나는 그걸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결혼도 일말의 구속력과 굴레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게 내 생산성을 저하한다면 나를 깎아먹어 가면서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사랑은 하고 싶었다. 평범한 사랑을. 호호 할머니가 된 후에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랑을 말이다. 옳은 사랑을 하기 위해 내가 바꿔야 할 것은 자신과의 관계였다. 나를 막대하는 사람들은 보내주고, 굳이 몇 주에 몇 달을 기다려 가면서 상대가 하는 거짓말을 분석하다가 헤어지지 말고, 쓸쓸하다고 오는 사람 덜컥 잡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나와는 연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빤히 있는 이상형을 외면하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삶을 좀 간단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맘에도 없는 핑계는 대지 말고.
여기에도 아버지와의 싸움이 한몫했다. 아버지는 나나 율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요구를 할 때 아예 요구 자체를 할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들어내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악기를 배우고 싶어 했다거나, 엄마가 외할머니의 병구완을 하러 가고 싶어 했다는 이유 등으로 집안 분위기를 험상궂게 만든 후 우리가 최초의 요구를 취소할 때까지 그 분위기를 유지하는 따위의 일이었다. 엄마도 정말 필요한 일에는 저항을 했지만 엄마에게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학습된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형성된 엄마의 고운 심성은 이런 고요한 개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만 참으면 식구들이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엄마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 분위기를 조성하여 교묘하게 사람을 조종한 것은 아버지이지만 표면적으로, 결정을 철회한 것은 나나 어머니, 그리고 율이 자신이 된다. 그러니 아버지는 안하무인으로 '니들이 그때 안 한다 해놓은 주제에 왜 이제 와서 엄한 나를 잡느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게도 학습된 실패의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패악질 때문에 배울 기회를 놓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저항하지 않았을 때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아질 일은 없을 터였다. 불 보듯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