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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람 Nov 14. 2019

옳은 것을 알아보는 방법 - ⑤

생계형 거짓말쟁이들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다 했던 내가, 상대와의 의논 없이 혼자서만 정한 기간 동안 사랑하는 것은 '옳은'가? 또한 이것은 평범한가? 마지막으로 이것은 내가 변하는 데 도움을 줄 간단한 삶의 방식인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였다. 당시의 사고의 흐름은 아래와 같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애정 관계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직 아버지의 집에서 살기 때문에 나와 상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숨기기도 힘들어진다. 또 상대방과의 관계가 길어질수록 상대도 뭔가를 눈치챌 것이다. 그가 내 인생에 더 깊이 들어올수록 나는 학대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어질 것이다. 차라리 말도 없이 떠난 천하의 죽일 년이 되는 게 학대 경험 때문에 성격에 결함이 있던 전 여자 친구로 남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른 문제에서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존재가 내 결정과 앞으로의 사고방식을 제어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던 내가 애정 문제에서는 신명 나게 끌려 다니고 있지 뭔가. 나를 해코지할 만큼 나쁘지는 않아도 자잘한 부분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적당히 나쁜 사람을 만나 몇 달을 사귀다가 그의 이면을 실컷 관찰한 후에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 하등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소모하고 더 나은 선택이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 간단한 삶에서 자발적으로 멀어지는 것.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독만 남은 늪에 턱까지 푹 담그고 있었다. 이때 나는 피해자라는 역할 놀이에 취해 모든 인간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한 일들에서 나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는 건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 클로드와 동거하게 된 후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질서 밑에서 거짓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유독 피해자에게만 도덕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역겨웠다. 언제나 머리 끝까지 화가 나 팡 터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세 가족 중 가장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활용하는 사람이었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어머니와 율이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악기를 배우거나 아르바이트를 했고, 어머니는 내가 만들어준 거짓말로 10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율이는 우리 중 가장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로 거짓말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각자 나름의 방식은 있었지만 우리는 티 나지 않게 다른 박자에 맞추어 걷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그건 학교에서 선생의 눈길을 피해 쪽지를 주고받는 것만큼이나 객쩍은 일이었지만 우리의 삶을 각자에게 옳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일이었다.


 거짓말은 간단한 삶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게다가 옳은 일도 아니었다. 멋있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삶을 조금 더 옳게 했다. 숨 쉴 틈을 만들었고, 하루라도 덜 악쓰며 살아가게 했다. 그러니 나에게만은 옳았다. 그래서 내 삶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의 자리만은 조금 터놓고, 삶을 더 간단히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의 냉전으로 끝날 일에는 굳이 거짓말을 동원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동생과 엄마의 평화까지 인질로 잡힐 일이 아니라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했다. 사람을 시험하지 않았고, 옳던 사람이 옳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하면 떠나게 두었다. 질투가 날 때는 질투를 인정했고, 좋아하는 것은 솔직하게 표현했다. 가장 깊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 화를 두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이것으로 복잡하던 내 삶이 하루아침에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허리까지 오던 머리칼을 단발로 자른 정도의 상쾌함은 맛볼 수 있었다. 숨 쉬는 게 한결 가벼웠다.



 나는 종교의 덧없음을 좋아했다. 약한 사람들이 모여 그 연대의 힘으로, 불가사의한 기적마저 일으켜 가며 이 엿같은 세상을 살아나간다는 개념이 좋았다. 그런데 수많은 교회와 절과 성당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거닐면서도 그들이 부르짖는 구원을 믿을 수는 없었다. 이미 지금까지 걸은 길의 반을 아버지의 손아귀에 머리채를 잡힌 채 그의 변화무쌍한 박자에 따라 거닐었는데, 내가 살기 위해 한 일도 율법에 어긋나므로 참회해야 한다 말하는 그분들의 인자한 얼굴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빨라지고, 느려지다가 또 뚝 하고 멈추는 아버지의 박자 속을 걸을 때마저도 최소한의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나의 선이 곧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내게만은 옳은 선이었다. 요즘의 내가 걷는 길이 내게 옳으면서 또한 곧게 뻗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갓 어른이 된 무렵의 내가 한없이 흔들린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그 무렵의 내 행동을 꾸짖을지언정 절대 부끄러워할 수는 없다. 아무리 쪽팔린 일이어도 그것은 살아내는 과정의 몸부림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있어 살아남은 나만은 절대로 손가락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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