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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람 Nov 14. 2019

나와 너를 구분하는 방법 - ②

프레임 장인 천사장

 가족으로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천 씨 일가에는 '니들'과 '나'의 구도만이 존재했다. 여기에 가끔씩 삶에 환멸이 난 엄마의 참전으로 '천 씨네'와 '박 씨인 나'가 추가되긴 했지만 아버지가 만든 구도에 비하면 이것은 압도적으로 적은 빈도로만 나타났다. 우리가 아직 의무교육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았을 적부터 아버지는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로 이 구도를 공고화했다. 아버지는 주위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리면 인력 사무소장이 되어 엄마를 돈 한 푼 받지 못할 자원봉사의 지옥으로 차출 보냈고,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자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촌의 숙제를 들고 와 내게 넘겨주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 아버지가 나나 어머니에게 귀띔해주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가 '하지만 그 날에는 나도 예정이 있는데'라고 하면 산미치광이처럼 오만 데에 가시를 뿌려 놓기 일쑤였다. 이 싸움은 늘 어머니가 일정을 재조율하고 아버지가 멋대로 약속한 일터에 가는 것으로 끝났다. 패턴은 일정했다. 아버지는 본인이 끼어 있는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일손이 모자라 곤란하다 말하면 '우리 부인을 보내겠다'라고 말했고 이 결정 사항을 집에 와 통보했다. 드물게-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내겠다 강력히 주장한- 상대방이 정상인이라 무척 부담스러워하며 거절해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그저 '니들'이면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자유의지도 자신만의 인간관계도 없이 아버지의 말만 따르면 그만인. 아버지는 어느 날은 인력 사무소장, 또 어느 날은 나머지 가족들의 단죄자, 또 어느 날은 갸륵하기 그지없는 천 씨네 둘째아들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우리 편'의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애석하게도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가족을 이뤄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처럼 본인만이 불쌍하고 본인만이 법인 사람은, 비대한 자아 때문에 만년이 사춘기인 사람은 평생 뒤주에 갇혀 거울과만 대화하면 그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아버지는 가장 가까이에 두고 괴롭힐 사람을 둘이나 만들어냈다.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혼이 났고, 율이가 잘못하면 나와 엄마가 욕을 먹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욕을 먹지 않는 건 아빠뿐이었다.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전부터 우리는 '니들'로서의 자아를 형성해나갔다. 끊임없이 역할을 부여받았었다. 엄마는 '당신이 애들 잘 안 잡으면 누가 잡아', 나에게는 '니가 누나니까 좋은 본을 보여야지', 그리고 율이에게는 '니가 집안에 유일한 남자니까 여자들을 잘 돌봐야지'. 그럴 때마다 아빠는 누구를 돌보는 사람일까, 조금 궁금했다. '우리를 돌보는 사람'이 아빠의 역할 같지는 않아서였다. '니들'이 아닌 아빠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빠 말만 들으면 '니들'이 되게 나쁜 사람 같았다. 술을 먹은 아빠는 '니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했고, '니들'이 누구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냐고 했다. '니들' 때문에 아빠 신세가 이렇다고도 했다. 가끔 그의 속에서 '니들'은 분열하여 나와 율이로만 구성된 하부단위가 되기도 했다. 엄마가 '니들'을 세뇌시켜서 '니들'이 아빠를 우습게 본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니들, 너 정말 나쁜 녀석이구나!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빠는 '니들'중 누구의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과연 아빠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빠에게 매를 맞고 폭언을 들을까? 식구들 중 유일하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행동을 종속당한 사람들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또, 아비를 우습게 보는 자식들이 술에 취한 제 아비 앞에서 두려움에 손끝을 떠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가 '니들' 대 '아빠'라는 구도를 원했던 적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던가? 니들은 억울했다. 나는 이날, 자기 연민만큼 추하게 취할 수 있는 감정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

 


 율이의 잘못으로 내가 혼나고, 내 잘못으로 엄마가 경을 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 '니들'의 자아 경계는 너무 삶은 양배추처럼 흐물흐물해져 갔다. 아버지가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입맛대로 각색된 이 현대판 오가작통제는 점점 모양을 갖추어 갔다. 우리가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한 거다. 엄마는 나를 시켜 율이에게 여자 친구가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게 했고, 나는 어차피 엄마와 같은 휴대폰을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감시 때문에 율이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집의 이런 기형적인 질서 때문에 우리 엄마는 내가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보다 먼저 전해 들을 수 있었다-내가 왕따가 된 날 아침 가해 아동들이 보낸 문자를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엄마여서-. 이 일은 지금이나 농담거리지 당시에는 암울했다. 율이가 학원에 간 사이 율이의 버디버디 아이디에 접속하여-아이디를 만들어준 것이 나였기 때문에 비밀번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율이의 교우 관계를 캐다 보면 마치 구 동독의 스파이라도 된 듯했다. 고작 네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내게 늘, '누나는 대단하다'며 양 눈을 반짝이던 아이한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율이가 읽은 쪽지를 여는 한순간 한순간이 역겨웠다. 니들로서의 삶에 명예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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