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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람 Nov 14. 2019

나와 너를 구분하는 방법 - ③

섬세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


 면접에 합격하여 나의 프랑스행이 어느 정도 확정되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프랑스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때 내 안에 휘몰아치는 두려움은 나의 부재로 인해 엄마가 겪게 될 횡포나 허전함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었지만 더 한국에 있다간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어 자아를 가졌다는 게 꼭 '니들' 멤버에서 제명된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정신무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라는 동안 부모한테 영어 학원 보내달라고, 프랑스어 학원 보내달라고 조른 적도 없고 그렇게 조를 것을 허용받지도 못했다. 또한 그 결핍을 부모의 탓으로 돌린 적도 없다. 제한된 자원 내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었다. 교수님이나 부모님, 혹은 어떤 인맥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행의 기회를 거머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프랑스행에 축복을 청하는 건 내가 엄마에게 청할 수 있는 어떤 최소한의 것이라 느꼈었다. 나는 없는 것을 내놓으라 떼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쯤은 이래도 되잖아. 되뇌며 나를 다독였지만 슬픈 예감은 엇나가지를 않았더랬다.


"람아, 네가 가면 나는 어떻게 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떨리고 있었다. 체제비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집은 한인 네트워크로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차피 돈 벌러 가는 거니까 집에 손 벌릴 일 없어요. 준비했던 대답들이 갈 곳을 잃었다. 내가 없는 것을 내놓으라 떼쓰는 사람이 아닌 건 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거였다. 나 스스로 내 청이 최소한의 무언가라고 생각했듯, 엄마 또한 우리 모녀가 차근차근 살뜰히 돈을 모아 나와 엄마, 율이의 평화를 사는 것만을 보고 달려왔었다. 딸에게 생계를 의탁하지도 동생 뒷바라지를 시키지도 않고 딱 이 정도만을 내게 얹으려면 엄마 또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큰딸 람이가 마음 잡고 다니던 회사만 똑바로 다니면 그 꿈이 궤도에 오르려던 찰나 니들 멤버 중 하나가 탈주를 선언한 것이다. 엄마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의 '어떻게' 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결을 나는 빠짐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두려웠을 것이다. 율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집에 없었고, 따라서 내가 술 먹은 아버지와 엄마 사이의 유일한 완충제였으니까. 교우관계에 그치지 않고 혈육 간의 만남까지 통제하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엄마의 유일한 여자친구였다. 겨우 버티면서 사는 사람에게 마지막 지푸라기까지 앗아가는 마음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남매만 생각하며 옥상에 매달린 엄마 손을 밟아 떨어트리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프랑스 이야기를 꺼내기 전 나는 기숙사에 있는 율이에게 전화를 했었다. 최종면접에 합격했다고. 프랑스에 갈 거라고. 엄마 이야기를 꺼내려니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걸 눈치챈 율이가 엄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누나 너나 걱정하라고 했다. 누나 니가 뭔데 세상 사람 다 구하려고 하냐고 했다. 전화를 끊고 밥그릇 뺏긴 개처럼 울었다. 우리 가족을 뺀 세상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텐데, 세상 사람이 아니라 내 엄마의 평화가 걸린 일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꿈이 달린 일이기도 했다.



'누나, 살다 보면 다 살아져'


 람이가 말했었다. 살다 보면 다 살아지니까 엄마도 괜찮을 거라고. 그런데 율이는 몰랐다.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엘 다녀왔던 것도, 우리가 없을 때마다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내게 울며 털어놓았던 것도. 엄마가 소리 죽여 울며 우리 머리에 뽀뽀했던 그날 도망치지 못했던 게 다 우리 때문이었다는 것도. 내가 학교에 있을 때마다 혹시 엄마가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가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는 것도, 내가 학교에서 떠도는 온갖 소문에 농담을 몽땅 머리에 쓸어 담아 식구들 앞에서 풀어놓은 건 다 엄마가 한 번이라도 더 웃어야 옥상에서 한 발짝 더 멀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율이만은 몰라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었다. 엄마 아들은 그런 걸 다 받아내기에는 무척 섬세한 아이라고. 그런데 엄마, 엄마 딸도 이런 거 모를 수 있으면 모르고 싶었어. 담배를 피웠다면 베란다에서 한참을 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살던 집에서 울고 싶을 때 갈 곳이라곤 화장실 정도였다. 나는 장염에 걸린 체하며 몇 번이나 물을 내렸다. 엄마가 '그럼 나는?'이라고 했다. 엄마가 여섯 살 아이의 모습을 하고 달리기 시작한 비행기 뒤를 울며 쫓아오는 상상을 했다. 이때 만나던 남자가 종종 라뽀(Rapport)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애착. 그런 뜻이란다. 엄마와 나의 라뽀는 왜 이렇게 짠하고 섧게만 형성되었을까. 또 한 번 변기 물을 내렸다. 거세게 흘러가는 물줄기에 히끅대는 내 숨소리도 흘려보냈다. 엄마도 이런 걸 바란 적은 없었겠지만 엄마, 나는 한 번쯤. 다른 것보다 먼저 내 딸 정말 잘했다. 혼자서 정말 애썼구나.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어. 한숨을 섞어 내 팔자에 무슨, 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삼켰다. 그 말 대신 코를 풀었다. 나는 불쌍하지 않다. 나는 하루에도 밥그릇을 다섯 개는 뺏긴 개처럼 슬펐지만 불쌍해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팔자 운운을 하는 순간 그대로 불쌍한 삶의 정중앙으로 퐁 떨어질 것 같아 무서워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불쌍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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