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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Sep 22. 2019

캐나다에서 병원 다니기

이민 10년차가 느끼는 이 곳 의료 시스템의 장단점

  캐나다 이민생활의 대표적인 불편함으로 손꼽히는 의료제도에 제가 느끼고 경험한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와 가족의 경험이 바탕이기 때문에 다소 주관적일 수 있지만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라체'로 편하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질병 앞에는 누구나 평등하다. 

 약값을 제외한 캐나다 의료서비스는 거주자에게 무료이다. 가정의는 물론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든 입원을 하든 "수납하고 오세요" 라는 말은 들을 수가 없다. 즉 돈이 없어서 병원을 못가거나 수술비 및 입원비를 걱정해야 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응급실 이용도 공짜이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약물에 취한 노숙자와 같이 대기하고 치료를 받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의료서비스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아침에 수술했다면 경과를 지켜봐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오후에는 핏주머니 들고 퇴원을 해야한다. 통증관리는 링거주사 대신 처방받은 마약계 진통제가 대신한다. 역시 공짜니깐 짜구나... 했는데 하루 또는 이틀 동안의 케어는 생각보다 관대하다. 홀홀단신인 사람도 수술 끝나고 집에 갈 수 있도록 보호자 노릇까지 해준다. 가진자에게는 불편하지만 없는자에게는 이보다 충분할 순 없다. 


 연방의료법이 병을 키운다?

    의사도 넓은 의미에서는 공무원이다. 분야별 의사의 수를 국가에서 제한하고 있어 의대를 졸업해도 자리가 날때까지 장기간 대기해야 하기도 하고 답답한 내가 임의로 병원을 차려서 돈을 벌 수도 없다. 상당히 높은 연봉에도 성이 안차면 미국에 가서 의사노릇을 한다고 한다.  

  어디가 아프면 내 스스로 내과,외과,산부인과,안과,정신과 등등 1차적인 자체 분류를 마치고 평판좋은 병원을 검색에서 잽싸게 찾아갈 수 있었던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1차적으로 가정의와 만나야한다. 가정의의 범주를 벗어나는 케이스는 가정의가 (이왕이면 내 집에서 가까운 곳의) 스페셜 닥터에게 나를 의뢰한다. 그 이후 스페셜 닥터 오피스에서 나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야하는데 그 기간은 몇 달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즉각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에 간다. 그렇다면 중병을 앓거나 몸이 약해서 허구헌날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은 도저히 못살 곳이 아닌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 '대기시간'을 결정짓는 가장 큰 척도는 나를 괴롭히는 이 질환이 얼마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가이다. 중병이라면 대기시간도 상대적으로 짧다. 대신 얼굴에 이름 모를 피부병이 생겨 도저희 얼굴을 못들고 다닐 정도가 되어 일상생활을 포기할 지경이 되어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용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스페셜닥터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쓸개에 돌이 생겨 엄청나게 고통스러운데 타이레놀 3로 통증을 다스릴 수 있다면 수술할 때까지 몇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몇년전에 유방암수술을 한 지인은 암진단 이후 수술까지의 과정도 일사천리였고 수술 이후로도 암환자로 지정되어 방광염으로 응급실에 가도 우선적으로 치료를 받고 방광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진료 및 검사를 받는다면서 상당히 만족해한다. 막상 중한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진 분들은 퇴원하면서 기부라도 하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나 역시 남편이 수술 후 퇴원을 하면서 똑같은 심정이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살짝 아픈사람은 불편해하고 크게 아픈 사람은 나름대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최소한의 의료행위가 주는 뜻밖의 선물  

 느리고 답답한 이 의료환경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또 한가지는 과잉진료 및 과잉처방에 대한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9알의 약을 처방받는 대신 집에 있는 애드빌을 먹으라든지 지금 당장 수술하시죠 라는 말은 일단 지켜보고 6개월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로 흔히 대체된다. 경쟁과 영업, 이윤이라는 가치가 빠진 의료서비스에는 그야말로 꼭 필요한 항생제와 최소한의 수술만이 존재한다. 솔직히 때로는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마저 못 받는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세금을 더 걷고 의료보험료를 올려서라도 의사와 병원의 수도 늘리고 의료장비에 투자도 해서 더 신속하고 적극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하기도 한다. 얼마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돈만 있으면 의료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는 한국의 기대수명은 약 73세로 OECD 국가중 평균 보다 높은 편이었지만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열명중에 세명으로 열명중 아홉이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캐나다 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이다.


 모르는게 약이다. 

  이민 온 지 10년..마흔이 훌쩍 넘은 동안 종합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은 한국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하시는데 난 좀 회의적이다. 내가 사는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에서는 40세가 넘은 여성들에게 2년에 한번씩 자궁경부암과 유방암검사를 무료로 실시한다. 그 두가지 암은 대부분 무증상이고 초기 발견하여 치료시 예후가 좋기 때문이다. 그 외에 아무런 징후가 없는데 전신을 스캔하여 아무리 작은 종양이라도 조기에 발견하여 일찍 대처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공짜니깐 의료예산을 아끼려고 그러나 싶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멀쩡한 사람에게 불필요한 공포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과잉검사로 인한 방사능 피폭 등 조기검진으로 인한 실익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우스갯소리로 여기서는 병원다니는 환자가 적다고 한다. 발병해서 진단명이 나오면 그때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니깐. 내 생각에 이 부분은 딱히 좋다 나쁘다고 정의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살아있는 동안에는 답답한 캐나다 의료 제도를 최대한 현명하게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다. 내 몸에 더 관심을 갖고 평소에 작은 징후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패밀리 닥터에게 엄살을 떨어서 필요한 검사를 받으면 그게 무료건강검진 아닌가. 나는 조만간 최근들어 갑자기 피곤해졌다는 이유로 전반적인 병리학 검사를 요청할 생각이다. 내 가족력인 당뇨와 고혈압에 대한 검사와 중년여성에게 흔하다는 갑상선기능검사까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 이 답답하고 느려터진 의료 제도 아래서 마음편하게 천수를 누리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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