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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롯됨에 대한 성찰

들여다보는 삶

by 최국환




내 그림자엔 내장이 없는 것이 좋았다.

추잡한 세상, 곤두박질치는 숙취에도 거뜬한 것이 편했다. 그 어떤 가설에도 얼굴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추측에도 결코 드러내지 않은 외줄 타는 광대의 정체된 순간 같은 것, 머리 하나쯤 동강 잘라내도 흔적 없을 내 그림자엔 토할 것조차 없는 그 무엇 하나 없음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 어느 날 내 기억 속 잔잔한 떨림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병원 입구 한쪽을 차지한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치료 후유증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런 얼굴 모습과 바짝 마른 체구가 어딘지 모르게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험한 세상을 살아온 노력의 대가치곤 너무 초라한 모습, 정돈이라곤 찾을 수 없는 어설픈 반영이었지만 그래도 거듭나겠다는 의지 하나로 발길은 고스란히 나를 품어줄 작은 둥지로 향하였다.

17년 전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내 기억 속 하루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의 몸으로 회복된 지금, 이제와 생각하니 지난 시절 누구나 가슴에 품은 아물지 않은 상처가 하나쯤은 있겠거니 생각되지만 그 시절의 긴장된 떨림은 어찌 보면 내겐 또 다른 비롯됨의 기억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기억마저 말려버릴 것 같이 무척이나 더운 지난여름 무렵, 우연히 한적한 골목 모퉁이에 덩그렇게 놓인 마른 풀꽃을 보았다. 간밤에 찔끔 내린 이슬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을 모양으로 곧 잊힐 운명이었다. 오후 나절 태양은 내 바지 허리춤을 바짝 죄여오는 벨트의 긴장 이상으로 공기를 덥히고 있었다. 왠지 측은한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긴장의 끈을 넉넉하게 풀고 있었다.

바로 태양을 송두리째 잠재운 내 그림자였다. 마음은 비록 무심한 발길에 혹여 치일까 하는 연민의 근심으로 가득했지만 어찌할 수 없는 풀꽃의 통증을 순간이나마 가려줄 수 있어서 내심 감사한 마음이었다.


60년을 살아온 인생길, 물론 내 시작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해야만 했다.

그저 삼시 세 끼로 배를 채워 몸을 불리고, 생각하는 마음의 절반이나 되었을 때쯤 한 성취와 그 반대편의 좌절들, 그 과정에서 얻은 수많은 미련과 시련들, 버리지 못해 방치한 욕망의 잔재들이 한 데 섞여 내 몸속 암세포로 키워졌을 것이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의 많은 자들의 한결같은 일기였음을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지난여름, 우연히 마주친 그 풀꽃은 결코 눈으로만 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속 향기로 먼저 피어 아련한 그리움에 또 소리 없이 기억에서 잊히려 했을 것이다. 결코 남을 향한 마음을 처음부터 큰 그릇에 담아내지는 않으려 작게 피어났을 것이다.

그리 죽어가는 풀꽃을 내 그림자는 스스럼없이 받아내고 있었음에 짧은 순간이나마 내 속에 숨겨졌던 본의 아닌 순수를 만날 수 있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내 겸손한 공의는 거기까지인 것을!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코 그렇지 못했음에 긴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때론 욕망이라는 거듭나지 못할 심정으로 재물로 온몸을 치장하고,

때론 명함에 새긴 지위의 완장을 팔에 두르고 모든 것을 발아래 두려 했고,

때론 그릇된 종교지식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인성의 잣대를 기준하고,

그리 살아왔으므로 인해 내게 상처받았던 많은 것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송구한 마음인 점을 생각하면 그날 마른 풀꽃의 그림자 되어준 또 다른 나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내 사는 인근에 자리한 소록도를 다녀왔다. 그저 코로나19를 피할 심산으로 간편하게 출발한 길,

거리엔 이쯤 되면 되었지 하는 심정으로 떨어졌는지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이 한결 여유롭게 보였다.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길, 그간 간간이 찾은 장소였지만 오늘따라 왠지 숙연한 마음이었다.


오랫동안 병든 자들을 품어준 넉넉한 풍경은 그날도 한결같았지만 한센병으로 아파하던 그네들을 보살펴준 두 분 수녀님의 희미한 흔적이 가슴을 조여 왔다.

60년 전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이곳 소록도에 정착한 두 분, 마리안 마가레트 수녀님들의 대가 없는 희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백 년을 이어온 소록도의 아픔은 그저 한센병이라는 몹쓸 병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으로 인한 사회로부터의 외면, 주변의 손가락질,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그들의 가슴속엔 더 치유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그네들의 뼈아픈 심정을 두 분 수녀님은 아무런 대가나 바람 없이 항상 어루만져주셨다고 한다. 당사자인 환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첫날부터 맨손으로 돌봐주신 그분들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2015년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고국으로 향하는 길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그야말로 말라가는 풀꽃 같은 환자들에게 욕심부리지 않은 순수한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래 이젠 내려놓아야겠다.

작으나마 풀꽃 그림자 되었던 순간의 비롯됨으로 돌아가야겠다.

그간 살아왔던 세상, 추악한 단상에서 나를 내릴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유로 태양을 훔쳐 내 그림자에 상처를 주는 삶보다는 비워 다시 채워지는 것들 모두가 그날 풀꽃을 품은 순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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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대한 성찰






내 그림자엔 내장이 없는 것이 좋다.

추잡한 세상,

곤두박질치는 숙취에도 거뜬한 것이 편하다.

그 어떤 가설에도 얼굴 보이지 않고

어떤 추측에도 결코 드러나지 않은

외줄 타는 광대의 정체된 순간 같은 것,

결코 날개 달지 않은 겸손이 좋다.


머리 하나쯤 동강 잘라내도

흔적 없을 내 그림자엔

토할 것 하나 없음이 좋다.


우울한 욕망이 태양을 훔치고

달빛 고스란히 내리는 밤,

내 그림자엔

나 없음이 무척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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