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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Jan 19. 2021

엄마의 자개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돌곶이집 ep. 21

그 시절의 흔한 단독주택


독립을 하기 전까지 19년을 살았던,

단층으로 지어진 양옥집은

남쪽을 향한 안방과 목재로 마감된 거실,

북쪽의 한켠에는 보일러실과 연결되어 있는 독립된 주방,

다락이 딸린 작은 방 3개와 화장실로 이루어진

그 시절의 흔한 단독주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벽면과 천장까지 목재로 마감된 거실에는

밤색의 스웨이드 원단으로 마감된 소파세트와

원목으로 조각된 거울이 있었고,

빌트인 장식장은 막사발과 같은 도자기로 채워져 있었다.


부엌에는 카키색으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싱크대,

같은 색깔의 냉장고,

한켠에는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안방에는 6쪽짜리 자개장과 화장대가 있었다.



엄마는 ‘소중한 물건들은 모두 자개장 안에 보관하셨다. 


할머니가 주셨다는 두꺼운 솜이불이며,

명절에 꺼내 입으셨던 한복이며,

우리가 어릴 적 입었던 배냇저고리까지

모두 장 속에 넣어 보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집문서나 땅문서 같은 중요한 서류들과 적금통장,

인감도장까지도 모두 깊숙이 숨겨놓았고,

화장대와 문갑 서랍에는 아버지가 큰 맘먹고 선물하신

반지와 목걸이, 브로치 같은

액세서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안방의 가구들은

단순한 ‘세간살이’가 아니라 엄마의 ‘삶’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자개장,  혼수 때 마련한 가구를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다.



돌곶이집은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가구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집안을 군더더기 없이 만드는

기본에 충실한 물건들로 채워가기로 했다.


스위스 모듈 가구인 USM의 감성을 가졌지만

저렴한 콤비락 진열대는

인터넷이나 을지로 공구상가에 가면 흔하게 제작 가능한

파이프, 조인트, 패널, 3가지 부품으로 구성된

모듈형 수납장이다.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가구,

공감할 만한 가격으로 손쉽게 제작 가능한,

세월의 흔적을 타지 않는 기본에 충실한 가구이다.

파이프의 두께와 색상부터

상판의 재료, 공간의 사이즈에 맞춰 주문이 가능하고,

생각보다 무거운 물건(볼링공이나 타이어 휠까지도...)을

올려놓아도 괜찮을 만큼 견고하기까지 하다.


엄마의 자개장처럼 멋스러움은 없지만

채우기보다는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현관 앞 신발장, 욕실 수납장, 침실 옷 정리함까지

모두 콤비락으로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다.



TIP

1965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모듈형 가구 usm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40개국의 다양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쓰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http://instagram.com/dolgoj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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