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곶이집 ep. 20
건축가들은 공간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그 공간을 채우는 가구를 디자인하는 일도 많다.
미스 반 데 로에, 르 꼬르뷔지에, 아일린 그레이,
핀 율, 알바 알토, 임스 부부 등
모두 디자인, 건축, 가구의 역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의자, 테이블, 문고리, 조명 등,
집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작은 소품까지 디자인하는 일,
우리가 사용할 가구는
보편적이고 대중화된 기성품과는
조금이나마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의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에
우리만의 특별함을 채우고,
공간의 균형을 찾는 일,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가구를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우리가 건축가로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특별한 경험과 기회가 되었고,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돌곶이집이
흔한 재료로 만들어진 창고 같은 공간이 된 것처럼,
가구도 역시 가공되지 않은 간결한 구성이 되길 바랬다.
방마다 설치되는 붙박이장이나 수납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싱크대,
차가운 욕실의 새하얀 세면대,
침대 같은 소파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오전,
우리는 돌곶이집에 꼭 맞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
을지로 3가에서
청계천 3가 사이에 펼쳐진 골목으로 향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
을지로 일대의 공구상가나 공업사는
재료를 구하고 가구를 만드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몇 가지 부품과 파이프로 조립 가능한 콤비락 수납장,
존재감 없는 투명한 유리 테이블,
간결하고 단순한 스테인리스 싱크대,
손수 거푸집을 만들어 제작한 콘크리트 세면대,
간단히 쌓기만 하면 책 수납이 가능한 아크릴 수납대,
깃발 모양으로 디자인된 네온사인 조명
모두 을지로에서 제작한 가구들이다.
나에게 딱 맞는 가구란
시간이 쌓이고 쌓여 쓰는 사람의 생활이 녹아든 것,
교체주기가 느린 물건,
어떤 면에서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또는 누군가를 따라서 공간을 꾸미기보다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진짜 나 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TIP
을지로에는 소형 철공소들이 많아 적은 양의 재료로 소량생산이 가능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가구를 만들고 싶지만 도면이나 모델링을 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스케치를 가지고 을지로에 계신 제조업 장인들을 찾아가면 쉽게 제작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