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ias Feb 06.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2)

그녀 이후, 사랑은 없다(2)

그녀의 첫 수업 시간, 교실문을 열자마자 눈이 부셨다. 내 머리 위로 빛이 비치고 있었다고 한다.

“널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던 거야” 훗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다소 어리숙한 면이 있었다. 교사라는 위치를 망각해서인지,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는데, 가끔 교무실에서까지  나를 무릎에 앉히고  볼을 쓰다듬기도 하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교사들은 눈을 흘기며 우리를 관찰했다.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스타였지만 동료인 교사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동료 교사들은 그녀를 싫어했다.

그녀와 동기인 한 교사가 내게 물었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될 것 같아?”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은데요?”

“몇 년이나 가겠어?”

“평생이요. 내기해요. 확인할 순 없겠지만”


그녀는 월요일 교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학생, 그것도 동성인 학생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교사의 행위인가? 에 대한. 동료들은 한심하다는 듯 비웃으며 그녀의 반성을 기다렸다. 그녀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뿐이 없나요? 그것도 반대 성인 사람? 전 잘못이 없으니 이대로 계속 지낼 겁니다”

그녀는 교무실 왕따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조심하자고 했다.

“나의 사랑아. 나는 고작 그런 일로 부서지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부끄러움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를 공개적으로 자아비판하게 하면 내가 창피해할 줄 알았나 봐. 난 자아비판하지도 않았고 창피하지도 않았어. 자신들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이방인으로, 죄인으로 몰고 가는 그들에게 무릎 꿇지 않을 거야. 달빛 아래 구부러진 오래된 소나무처럼, 어떤 역경에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야. 우리 계속 가자”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한 나를 보고 더 이상 교무실에선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만날 약속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보고 파서 집을 나서면 그녀 역시 나를 향해 오고 있었으니까. 달빛 아래 그녀와 우리 집 중간쯤의 좁다란 골목에서 우리는 늘 마주치곤 했다. 그녀의 발걸음소리는 날 숨 막히게 한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나를 잊었다. 그녀의 목소리, 향기, 손길이 날 휘어잡아 정신이 혼미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밤길을 산책하고 그녀 집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헤어질 땐 어김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에게 쓰는 편지, 그녀에게 받은 편지는 달빛 아래에서만 허락된다. 소녀에게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3학년이 되어 국어선생님이 바뀌었다. 담임선생님이 국어 담당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녀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무엇보다 자기 반 반장이 담임보다 다른 국어선생님과 친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나 보다. 한 번은 조회시간에 우연히 내 교과서에 정성껏 쓰인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교과서를 찢어버렸다.

“다시 한번 이런 짓 하면 용서하지 않을 줄 알아!”

'무슨 짓이요?’


담임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이상한 여자하고 딴 짓거리를 한다고 그 여자 하고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엄마는 그녀와 만나기만 하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버린다 거짓 위협을 하셨다.

대하소설 [토지]에 빠져있었던 담임선생님은 매일 전화를 걸어서 책을 읽어주었다. 너는 공부해야 하니, 내가 대신 책을 읽어주겠다며. 나로 말하자면 평소에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담임선생님이야말로 내가 공부할 시간이 없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매일 1~2시간 동안 토지를 읽어주었으니, 그것도 감정까지 실어서 말이다. 서희에게 단단히 빠져 꿈애서는 서희가 되시기도 했단다. 담임선생님이라 일방적으로 끊기도 애매했다. 딴짓을 하면서 대충 듣다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호통이 날아왔다.

“너 그 여자 생각했지?”

“...(네) 아니요”


그녀와 나, 우리는 아주 치밀해졌다. 은밀하게 만났고 그럴수록 사랑이 깊어졌다. 하루라도 몸이 스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듯 늘 그리워했다.


      


작가의 이전글 뇌의 주인은 바로 나!(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