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ias Mar 06.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10)

되고 싶은 너

어디서 매번 자빠지는 거야. 전에 쓰던 수법 내겐 안 통해. 애 봐라. 숨 쉬어. 너 조회시간마다 기절해서 연약한 줄 알고 툭하면 양호실이야? 이제 그건 안돼. 네 버르장머리 내가 고쳐주겠어. 우리 반 반장이 동정받는 꼴은 못 본다. 강해져야지. 살아남으려면. 복도에서 네가 발작을 일으켰을 내가 미칠 것 같았지. 놀라 바라보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 그 시선을 즐기는 듯한 네 쾌락. 내 모습 같았어.


열 살이었어. 아빠가 돌아가신 게. 건강하신 분이셨는데  자살하셨어.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셨나 봐. 난 아빠를 많이 좋아했어. 아빠는 멋쟁이어. 영화에 나오는 이국적인  영화배우 같았지. 어쩌다 엄마같이 못생긴 여자와 결혼했는지 몰라. 엄마는 딱 나와 비슷해. 땅달하고 밋밋한 이목구비. 아빠는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젤 예쁘다며  날 유별나게  예뻐하셨지만 난 늘 의심해지. 거짓이라고. 나랑 똑같은 엄마를 싫어하는데 날 어찌 좋아할 수 있냐고.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어. 아빠와 함께 온 바람냄새도, 때론 야릇한 향수냄새도 사랑했어. 엄마에게 나는 쿰쿰한 냄새와  다른 세련된 냄새. 


어느 곳에 있던 존재감 없는 아이. 혹시 놀림이라도 받을까 숨죽이고 벽처럼 가만히 있던 아이. 이런 내게 관심이 쏟아진 거지. 평범한 공무원의 자살. 그리고 그의 외동딸. 그게 나라니까.

난 좋았어. 나를 동정하더라. 그 동정도 난  좋았어, 내가 세상의 중심. 좋았어. 나 자신감이 생겼어. 악착같이 우뚝 서고 말테야. 최선을 다해 선생님이 되었어. 그리고 아빠를 닮은 꺽달이 남과 결혼하게 되었어. 내 얼굴 눈높이 신의 겨드랑이. 그의 눈빛을 보기가 힘들었지만 마냥 꿈꾸었어. 지금은 달라졌지만 초반엔 그가 내 완벽한 남자라고 믿었지! 그는 무식해. 말이 없는 게 아니고 아는 게 없어서 말이 없는 거야. 책을 싫어해. 무슨 재미로 사나 몰라. 부부관계도 그저 그래. 처음엔 인형같이 작아 좋다더니 몸이 안 맞아하기 힘들다나. 아이도 안 생겨. 다행이다. 그가  벽취급한다. 난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 아빠를 사랑했지. 그는 아빠와 신체적 조건을 빼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 외모만 보고 아빠와 같을 거라 생각하더니 내 최대의 실수였어. 나와 수준이 안 맞아. 신랑이 있어서 더 외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어.



내 욕망을 채워줄 대상을 보았다. 넌 어찌 그리 빛나지? 내가 너와  결합될 수 있을까. 하늘이 날 돕네. 내가 너의 담임이 되었네. 매일 널 만각에 난 다시 생기가 돌아. 야리야리한 몸매에 세상의 고뇌를 담은 눈빛. 중성의 매력. 내가 어릴 적 꿈꾸던 내 모습이 바로 너야. 런 네게서 날 보았어. 그런 네가 쓰러지다니! 봐줄 수 없어. 아예 보건선생님은 네가 침대를 자기 것처럼 쓰는 걸 당연시하더라. 특권층이 되니 좋은가 봐. 툭하면 쓰러져서 관심받으며 실려가서는, 하얀 침대에 누워있다 나오기만 하면, 아이들의 몰려 걱정 가득한 눈빛 한가득 보내주고.

넌 약하지 않잖아. 그저 쉬운 방법을 택한 거지. '난 너희와 달라. 그러니 특별대우 해줘' 어디서 이따위 가벼운 연기를. 난 속지 않아.


오늘 복도에서 숨을 헐떡이며 친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가는 널 보는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올랐어. "다들 교실로 돌아가!" 애들을 떼어내고 널 혼자 서게 했어. 숨이 정말로 넘어갈 듯해서 진짜 위험한가? 하다가 나도 모르게 네 따귀를 세게 때리고 말았어. "정신 차려! 네가 미친 애야? 왜 이래?" 점점 하얘지는 널 질질 끌다시피 하여 양호실로 데려가 문을 잠갔어. 얼마나 흘렀을까? 네 발작 비슷한 게 멈춘 게.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어. 호흡이 잔잔해진 너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어. 난 점점 부끄러졌어. 네 눈빛을 감당하기 힘들었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연수야, 선생님이 미쳤나 봐. 미안해..." 연수를 끌어안고 넋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건 부끄럽지 않았어.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는 네 얇은 손가락이 정말로 마음을 위로해 주었어.


"연수야, 나 외로워. 며칠 전 신랑하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어. 세상에 얼마나 눈부신 주말 한낮이었는지 몰라. 따사롭고 호수는 빛나고 하늘은 높았어. 호수에 비친 하늘이 너무 깊어 내가 빠지면 나오지 못하겠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냥 죽고 싶다는 거지. 신랑이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내게 못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미워. 신랑이라는 존재 자체가 날 우롱하는 기분이 들어. 그냥 미치도록 싫어. 요즘 더욱. 나는 누군가와 완벽하게 친밀하고 싶거든. 살면서 한 번도 친밀하게 느껴본 사람이 없어. 내가 꿈꾸는 사랑은 책에나 나와. 현실의 나는 볼품없는 국어선생님이지만 내 꿈속에서 나는 사랑에 목매는 낭만적인 여자란다. 연수야, 미안하다. 이런 얘길 어린 네게 해서. 이상하지? 네가 날 이해하는 것 같아. 그렇구나. 계속해도 된다고? 연수야, 나는 네가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일으키거나 쓰러지거나 하는 행동을 사람들이 보는 게 싫어. 그래서 널 때린 거야, 정말 미안해.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 알았어. 부탁이 있는데... 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니?"  



작가의 이전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