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만 되면 짠 것처럼 우울해진다. 일 스트레스는 별로 없는데, 남자친구가 없는 집이 허전해서 그런 건지 주말 동안 약을 안 먹어서 그런 건지 잠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주를 생각해 보았다. 해답을 알 것 같다.
남자친구는 월요일이 오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주말은 나랑 보내고, 월요일이면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까. 나는 월요일에 회사를 가야 한다. 일은 힘들지 않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서. 3-4년은 이 직장에 있어야 하는데, 내 꿈은 이게 아니라서. 남자친구와 있을 땐 함께 웃고 즐거운데, 월요일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내 현실을 마주해야 하니까.
한국에 살 때는 당연히 신분 문제를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이력서를 보고 마음에 들면 면접을 가는 게 당연하니까. 여기선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어도, 비자 스폰은 못해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영주권,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게 스펙인 나라. 그 초록색 카드 한 장을 받기 위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게 우울한가 보다. 내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래도 미국은 칼같이 퇴근하는 게 너무 당연해서, 5시 이후엔 다 내 시간이다. 9시에 출근하니까 일찍 일어난다면 아침 시간도 활용할 수 있다. 여름학기가 끝나고 가을학기는 쉬고 있는데, 자기 계발을 하자 싶어 타이머를 주문했다. 고등학교 때 질리도록 쓴 기억 때문에 이걸 내가 성인 돼서도 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25살이 되어서도 숙제를 하고 수학을 푼다. 그때 내가 알았으면 기겁을 했겠지.
내년에 얼른 학교에 가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도 남자친구처럼 월요일이 오는 게 즐겁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지치지만 뿌듯한 기분으로 귀가하고 싶다. 그때까지 체력을 기르고 돈을 모아야지.
스타벅스에 돈을 너무 쓰는 것 같아 인스턴트커피를 주문했다. 텀블러가 너무 커서 작은 컵도 사고. 그렇게 이것저것 담다 보니 100불. 그래도 직장에서 월급을 작게나마 올려주어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바다 수영을 갔다. 라이프가드가 있긴 했지만 파도가 너무 세 10분 정도밖에 못 놀았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앉아있는데 누군가 장미꽃 두 송이를 주었다. 그에게 꽃을 사주려고 했었는데 신기하고 행복했다. 사실 금요일에 꽃 주려고 했다고 말하자 "그거 말고 indoor plant 사줘"라는 대답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는 참 현실적인 남자다.
토요일은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두 번째 만남인데 이전보다 훨씬 편했다. 그처럼 좋은 사람들이라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오후 11시에 만나 새벽까지 놀고 4시쯤 집에 도착했다. 주말이 너무 빨리 사라져 나만 아쉬운 줄 알았는데, 그 또한 그랬나 보다. 너랑 보내는 시간이 많이 없다고 얘기하는 그가 귀여웠다. 너랑 사귀는 건 고등학교때 하는 연애 같다고. 여중여고라 누군가를 사귀어본 적은 없지만, 그때 연애를 했다면 지금 같은 느낌이었을 거라고 하자 그는 말했다.
"High school love doesn't last long. Don't say that, what the heck."
로맨틱함이라고는 잘 모르지만. 네가 너무 좋아서 어릴 시절 하는 사랑 같다고 말하는 것도 못 알아듣는 바보지만. 나는 그가 참 좋다. 그래서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