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지나가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느 덧, 늘 그랬듯이 흘려보내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의 뿌리가 생기고, 싹을 틔우고 있다. 딱딱하게 갇혀 있던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인정할 줄 알고, 나아갈 줄 안다.
운동가는 길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공허함을 느끼고 있을까. 이미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죽음이 얼마 안 남은 사람 처럼, 손에 쥔 것 하나 없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사실은 이미 다 가져봤기 때문에. 이미 손에 쥐고 있으니까. 잃을 게 무서워서 뛰어들지 못하는 나는, 갑자기 좋아하는 단어 다섯가지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고 성급하게 내뱉었다. 그러다가 바다에 뛰어 죽고싶으니까, 바다를 말했다. 어디서부터 내려오는 슬픔인지 괴로움인지 알 수 없지만 전형적이고 지루하고 말로 뱉고싶지도 않았다. 죽고싶다는 건 흔하고 지루하고 뻔하니까. 그 뻔함의 굴레 속에 갇혀있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추한가 이런거를 따지는 것도 지쳤다. 이제는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으니까 더 알 수가 없다. 모르겠는 일 투성이고 이러다가 그냥 죽겠지. 운동을 왜 하는 지 잠을 왜 자는 지 돈을 왜 버는 지 목적 없이 살기엔 깨달은 게 많지만 모두 의미 없다는 것도 알고 아닌 것도 안다. 순간의 아름다움, 섬광처럼 반짝이는 짧은 삶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매일 매일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붙잡고 이봐, 삶은 정말 아름다운거니까, 힘들어도, 괴로워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정신나간소리같은 걸 하고 싶은 기분이다. 근데 왜 자신에게 그런 소리는 못하지? 뭘 그렇게 우울하고 축 처져서 자신없다는 말만 쭉 하고 있는건지.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대로 쓰고 싶은대로 그냥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하면 될 일인데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있는 데 외면하는 것일까. 모르는 영역이라 뛰어들고 싶지 않은거지.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바다에 잠식되는 나의 영혼을 보게 된다. 돌덩이를 메고 들어가지 않아도 서서히 잠식되고 침수되는 내 영혼을 바라보고 있고 마음은 평안해진다. 약간의 불안함을 부적처럼 지닌 채로 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