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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Sep 17. 2020

내 속도를 찾아야지

천천히 걸어가요.

살아가는 일은 왜인지 뜻대로 잘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나 코로나는 모두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0년 계획했던 모든 일이 틀어지고 하고자 하는 일이 턱턱 막히는데 거기에 집안에 옴짝달싹 못하게 지내야 하니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은 배로 늘어가고 이런 감정들을 화로 분출해 내는 사람도 많다.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중한 것이 었는지 사람은 꼭 어려움을 겪어봐야 안다. 


오늘 아침에 내 손에 잡힌 책은 글 한수희 그림 서평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원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을 읽다가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난다. 청소를 하고 옷을 다리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요리를 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일고 있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p5.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안심을 한다는 작가의 서문에 나는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이 너무 그리운 요즘 작가의 일상을 탐닉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나와 작가의 삶이 닮아 보여서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나와 매우 닮은 듯도 싶고 아닌 듯도 싶다. 



집에서 일을 하면 좋다. 우선 아무렇게나 입고 있어도 된다. 나는 주로 잠옷을 입고 일한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양심은 있으니까 세수하고 양치질은 한다. 무언가 먹고 싶을 때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냉장고를 연다. 살림을 하는 집의 냉장고는 언제나 비어 있는 법이 없다. 배를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사 먹지 않아도 되니 좋다.

집에서는 일이 안 돼,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집에서도 일이 잘된다. 왜 그런가 하면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꽤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나 자신을 조련했기 때문이다. 

p24.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에서 


나도 집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코로나 전에도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날이 너무 좋으면 밖에 나갔다가도 빨리 집으로 돌아와 환기를 시키며 일을 했다. 원래 집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많고 붐비는 카페 같은 곳에서는 유독 집중을 할 수 없어 집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주부의 삶에서 살림은 떨어뜨릴 수 없는 문제이다. 남편이 아주 집안일에 나 몰라라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집에 오래 있는 내가 더 눈이 가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일 뿐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읽다 보니 작가님의 생활과 내 생활이 너무 닮아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전에 도서관에서 여성 작가들의 일에 관한 인터뷰집을 발견해 읽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죽거나 할머니가 되어버린 작가들이었다. 대개 헝클어진 머리에 스웨터와 면바지 차림이어도 어쩐지 멋진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천천히 일해요."

그렇지, 천천히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p26.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에서 


코로나 이후로 아이가 유치원에 못 가면서 오랜 시간 집에 같이 있게 되었다. 그 때문에 나의 워크 밸런스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달 까지는 아이가 잘 때 일하면 되니까 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한두 달이면 금방 끝나니 이 고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코로나는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고 아이가 유치원에 갈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 지자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다가 지쳐서 책에 눈을 돌리고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일해요"라는 말에 토닥임을 받았다. 코로나 이후 일은 나에게 짐짝과도 같았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에서 해야 하는 내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입지가 좁아졌다. 낮에는 아이와 놀아줘야 할 것 같은데 방치해 두고 일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시간만큼 죄책감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의미가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불편한 마음들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 아마 조급함이 나를 계속해서 채찍질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나에게 여유를 빼앗아 갔다. 집에서 일을 하면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에 의해 집중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도처에 깔려있다. 하지만 조급함만 가지고 이 많은 일들을 척척 해낼 수 없다. 욕심은 내려놓고 내 능력치를 가늠하여 차근차근 차분하게 이뤄내야 한다. 어쩌면 나에게 여유를 빼앗아 간 것은 코로나가 아니라 스스로 조급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내가 아닐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오늘 아침에 펼쳐서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함, 시시콜콜함. 

그것들 사이에서의 소중하고 평안함을 느끼게 해 줄 책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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