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할아버지의 수박차를 보다.
“수박차는 내꺼야!”
“내가 가질테야! 할아버지, 이 차 나 줘!”
어린 시절, 남동생과 나는 할아버지의 차를 수박차라 부르며 서로 자기가 갖겠다고 싸웠다.
할아버지의 수박차를 다시 본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침, 할아버지께서 계신 부산이 아닌 우리 집 앞이었다.
할아버지의 수박차.
수박차는 어린시절 동생과 내가 지은 할아버지 차의 애칭이다.
고급스러운 진녹색의 차가 햇빛을 받으면 수박과 같은 여러가지 색으로 보였다.
할아버지의 수박차는 자가용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의 상징이었던 시절, 최고급 세단 승용차였다.
앞뒤가 각진 네모, 널찍한 실내, 아날로그 손목시계 모양의 시계.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
수박차는 그시절 구의원, 새마을 금고 이사장을 하시며 잘나가던 할아버지의 성공한 인생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수박차를 80살 가까이 되실 때까지 직접 운전하고 다니시다가
우리 가족이 부산에 내려오던 날 지하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신 이후로 폐차하셨다.
그런데 그 수박차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수박차는 할아버지가 30년 가까이 타고다니셨던 차인데, 그 차를 우리 집 앞에서 다시 보다니.
혹시나 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할아버지가 아닐까 싶어 운전자의 얼굴을 보려했으나, 결국 보지 못하고 수박차는 먼저 앞으로 가버렸다.
설에 가족끼리 놀러가서 편찮으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외손녀 전화라면 연결음이 1번도 채 가기 전에 바로 받으셨던 할아버지였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날 아침에 내 전화를 두 번이나 받지 않으셨다.
편찮으신가..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며 가슴이 떨려왔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할아버지 전화 안받으셔. 너무 불안하고 걱정돼. 할아버지한테 내일 가보자.”
“할아버지랑 어제 통화했어. 아빠가 내일 내려가니까, 그 이후에 가보자.”
할아버지와 어제 통화했다는 엄마의 말에 조금 안도했지만, 여전히 할아버지가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쎄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의 수박차를 만나고 1시간 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무너져버렸다.
할아버지께서 그 차 안에 계셨을까. 외손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으셔서 직접 차를 타고 내가 사는 집 앞으로 나를 보러 오신 것일까.
만약 내가 하루 일찍 할아버지를 보러 내려갔다면,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을텐데.
만약 우리 아빠가 하루 일찍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다면, 할아버지는 살 수 있으셨을까.
만약 설에 할아버지를 끝까지 부산에 못 내려가게 했다면, 할아버지는 더 오래 살 수 있으셨을까.
만약 우리가 부산에 내려가서 할아버지를 케어했다면, 할아버지는 더 살 수 있었겠지.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만약“ 들이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다가 정당화한다. 그리고 또 “만약”을 얘기하고, 또 정당화하는 것을 끝없이 반복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탓을 찾으려하지말자.
부산에서 결코 엄마집으로 오려고하지 않으셨던, 가오로 사셨던 할아버지.
결국 봉안함에 모셔져서 KTX를 타고 우리와 함께 올라오셨다.
수박차 그 자체였던 우리 멋쟁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멋지고 강한 모습만 기억할게요.
따뜻한 곳에서 믹스커피 드시면서 편안히 지내세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