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9
첫째 딸이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를 썼다. 당연히 자의는 아니었고 학교 숙제였다. 어버이날이 하루 지난 어제, 편지를 보여줬다. 엄마 아빠 각각에 감사한 내용을 적었는데, 아빠인 내게 감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To. 아빠.
아빠는 주말에 공부하러 가는데 내가 아빠한테 빨리 집에 오라고 하면 빨리 달려와주고, 평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빨리 와줘서 고마워.
주말 아침이면 개인 시간을 보내려 한다. 평일은 생계유지를 위해 회사 업무에 쫓겨 살아야 한다. 이에 주말만큼은 나를 위해 살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깨면,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렵다. 두 아이가 일어나기 전, 집을 나선다. 동네에 위치한 스타벅스가 7시 30분에 문을 연다. 주말 아침이면 첫 번째 손님은 항상 나다.
첫째 딸은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유달리 사람과 놀기를 더 좋아한다. 둘째 아들은 유튜브 닌텐도만 있으면 아빠 따위는 필요 없는 존재이지만, 첫째 딸은 다르다. 주말에 일어나서 아빠가 없으면 전화를 한다. 아빠랑 놀고 싶다고, 집에 얼른 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매번 아이에게 달려간다. 물론 자기 계발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딸과 브루마블, 루미큐브, 다빈치코드 등 보드게임과 윷놀이 오목 등을 하고 나면 오전 시간은 끝난다. 가끔 내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매번 동일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한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나보다 아이이기 때문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아이가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낳는 거라고. 자식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부모를 사랑한다면 부모와 아이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다.
아빠로서 기분 좋은 상황들이 있다. 가끔 아이들이 오늘은 아빠 옆에서 자겠다고 서로 다툴 때다.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잘 잔다.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 자려할 뿐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며 볼뽀뽀를 해주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좋은 지위를 갖는 것? 부자가 되는 것? 똑똑한 사람? 개인적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인 부모와 자식이 사랑과 신뢰로 이어져있을 때 성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퇴근하고 귀가했을 때, 피곤한 아빠에게 애교를 보여주며 힘내라고 토닥거려 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피곤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는 아빠. 그게 성공이고 행복이지 않을까?
오늘과 내일, 휴가이다. 원래는 집안 행사가 있어 부모님 모시고 지방에 내려갈 계획이었다.(부모님과 나, 이렇게 셋만 가는 일정이었다.)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시다고 어제 취소를 하셨다. 예기치 않았던 시간이 났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픽업하러 갔다. 바로 학원으로 이동해야 해서 놀지는 못하지만, 오며 가며 짬나는 데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밥도 함께 먹었다. (지금은 두 아이 모두 학원에 데려다 놓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중이다.)
오늘은 아빠가 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날이자, 사랑을 듬뿍 주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