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조끼 가 한일
그 시절 하루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가끔 생각한다.
노트북,
핸드폰,
무전기.
그 세 가지가 전부였다.
무전기에서는 사원들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선임 관리자에게 지시를 받았다.
채팅방에서는 실시간으로 수정되는 내용을 반영해야 했다.
그 세 가지가 한꺼번에 울리는 순간이 하루에 꽤 많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다 했는지 잘 모르겠다.
채팅방이 많았다.
관리자끼리, 타 부서 간, 타 센터 간
잠깐이라도 안 보면 흐름을 놓쳤다. 놓친 것이 쌓이면 그날 물량 전체가 틀어졌다.
프로그램을 확인하면서 엑셀을 수정하는 일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진열 인원이 부족하면 진열하러 갔다.
매입 인원이 부족하면 매입을 잡았다.
지게차도 탔고, 전동 자키도 끌었다.
그 모든 것이 마감 시간 안에 끝나야 했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알았다.
생각하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이던 그 감각이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줄였다.
사원이 못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냥 가서 같이 했다.
지적한다고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관계가 틀어지면 그날 다 할 수 있는 일도 못 한다는 것도 몸으로 배웠던 시간이었다.
센터 안에서 그냥 모든 걸 하는 사람. 그게 관리자였다.
계약직이 오면 하루 일하는 것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했다.
8시간짜리 면접이었다.
아픈 곳은 없는지, 스케줄 근무는 가능한지, 물류센터는 다녀본 적 있는지
물어보는 항목이 많았는데, 사실 대부분은 그날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답이 나왔다.
왠만하면 불합격을 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다 힘들어하고 익숙하지 못해서 실수했다. 그게 그 사람이 일을 못하는 게 아니었다.
관리자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알려주면 됐다. 또 알려주면 됐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다 잘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관계가 틀어졌고
그러면 그날 다 할 수 있는 일도 못 하게 된다는 것을, 그 시절 몸으로 배웠다.
가끔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 계약직이 정말 간절하구나, 하는 것이 표정보다 먼저 느껴지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끝내 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합격 줄 거야."
말로 전하지는 않았다. 그냥 합격만 줬다.
지금 돌아봐도 그게 맞는 방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고, 말하지 않아서 더 잘 전해지는 것도 있다
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날 아침은 가끔 생각난다.
출근했더니 선임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사수가 관련되어 있었다.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 감정이 객관적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신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관련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결국 사수는 울었다.
아침에 인원 배치를 해야 했다.
배치가 안 되면 그날 하루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날 아침 혼자서 배치표를 짰다. 사원들에게 하나씩 알려줬다.
그게 끝나고 나서야 눈물을 봤다는 사실이 실감됐는데
실감이 왜 그렇게 늦게 왔는지, 지금도 그게 조금 이상하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그날도 평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전해지길 바랐는지 안 바랐는지도
그날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물을 보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 두 가지가 같은 아침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