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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관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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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y 18. 2020

결혼을 결심하다, 나를 축복하다

비혼주의자 선언을 철회한다

난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언젠가는 비혼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단호) 배우자 기도문을 작성해놓기도 했다.

수십 개의 항목이 구체적으로 한 땀 한 땀 적혀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하나가 있다.

바로 '걷는 속도가 비슷한 사람'이다. 여기서 '걸음'은 비유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함께 걷는 속도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사람'이라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실제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뭘까? 질문해보았다. 기꺼이 서로가 배려하는 걸음으로 조금씩 맞춰가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나에게 하는 카톡' 공지에 올려놓은 배우자 기도문의 제목은 그래서 다음과 같다.

"이런 연인을 만나게 해 주세요-나 역시 이런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언젠가 대학에 '션'이 강연하러 온 적이 있었다. 난 그가 내심 부러웠나 보다. 당시 한마디 한마디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근데 딱 한마디가 귀에 쏙 박혔다. '지금의 아내 정혜영을 만나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작성한 배우자 기도문을 매일 읊었습니다'라는 대목이었다.

물론 션이 멋진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못난 구석이나 모자란 구석도 있을 텐데 그게 크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잘 정비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부터 같은 걸음을 걷지 않았지만 지금은 부부로서 서로 닮은 걸음으로 귀감이 되고 있음이 정말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보이는 게 진실이라면!)

종교보다 중요한 건 내 내면에 어떤 기도문을 저장해둘 것인가라는 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내 미래는 거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친구나 지인의 결혼식에 간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나는 결혼'식' 자체 탐탁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단 한 번뿐일 결혼식이라면 형식이라 할지라도 예쁘게 치르고 싶다. 가장 현실적으로 말이다.

돌아보면 몇 번의 사랑에 실패했다. 누군가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고 했지만 난 실패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오롯한 진심이었으니까. 결혼이 사랑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누적된 실패의 결과로써 가장 최대치의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나이가 됐다.(살짝 늦었나;) 다 때가 있단 말을 부인하고 싶어도 가장 Best한 시기가 있는 현실은 무시할 수가 없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몇 년 이내에는 좋은 사람과 연이 닿지 않을까 싶다. 연애도 좋지만 이제는 결혼을 한 사람들도 비혼을 선언한 사람들도 모두 참 멋져 보인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응당 인간이라면 자신이 이루는 것들이 '한계가 아닌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오래 생각해왔다. 오늘도 배우자 기도문을 읊으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온 우주에 약속해본다. 두 손 모아 나와 내 미래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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