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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관계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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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28. 2019

인생을 낭비하는 현명한 방법

그것은 사랑이렸다

나 역시 긴 인생을 산 건 아니다. (겨우(?) 30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다'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에서 내가 산 인생, 지금 이 순간,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남은 날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란 말,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오늘'이라는 말. 나는 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인생을 '낭비'하자는 메시지다.


2030이여,
사랑에 홀딱 미치자.


미친'듯'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에 '미치는' 거다. 내가 미친 줄도 모르게 미치는 게 진짜 미치는 거다. 남들의 조언이 귀에 안 들어오고 나와 상대만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미친 사랑이다. 변이 온통 밝게 빛나 보이다가 일순간 다른 건 다 배경이 되고 그 사람 하나만 빛나 보이는 기적. 상이란 무대 위에 유일한 두 주인공. 함께 인생을 낭비할 수 있음은 신의 축복이다.


나는 남중 남고를 졸업하고 19살에 자원해 군대를 일찍 다녀온 후 반수, 복학, 편입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20대 후반이 된 것이다. 취업에 매진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서른 살. 그렇게 산 걸 후회하냐고? 아니. 그래도 연애는 하며 살았으니까. 그 사이에 나의 연애사는 그리 화려하진 않더라도 유의미했다. 적어도 '사랑에 홀딱 미쳐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착각했고, 그 시절의 나는 온통 그 사람 곁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글도 사진도 20대는 거의 남아있다. 다 처분했다. 그땐 사랑하다 죽어도 좋았고, 진짜 사랑하다 죽는 줄 알았다.


그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배신이었다. 하하. 감정에만 취한 것이 아니라, 배반과 갈등으로 이어진 실패의 결말로 인해 비로소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소설 같은 실화다. 그 소설의 끝을 다시 쓸 생각은 없다. 너무 완벽한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으니까. 연애할 때 말하는 사랑에는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미친 사랑과 대적할 더 이상의 사랑 분류는 없다.

요즘 이런 '바보 같은' 미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를 두 가지 이유로 나는 분석한다. 하나는 그런 기회와 여유 조차 없는 부자유한 청년들의 애석한 현실, 다른 하나는 이미 '연애 고수'들이 미디어에서 많이 떠들거나 연애의 정석을 노출시키고 있어 그걸 본 이들이 좀처럼 무모한 사랑 판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연애는 원래 (자기감정에 솔직수록)찌질한 건데, 이 시대는 처음부터 완벽한 사랑을 꿈꾸게 한다. 한두 번쯤은 내 인생을 올인해보는 무모한 짓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오롯이 취하는 일인데. 그게 그들이 즐기는 술이나 여행만큼이나 유의미한데도 말이다.


연애 루저나 연애 고자는 연애를 단순히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정말 홀딱 미쳐버린 사랑을 아직 못 해봤다면 '한 번도 못해본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무난한 사랑을 '한 시도 쉬어 본 적 없는' 자칭 연애고수보다 '한 두 번 사랑에도 내 모든 가치를 사랑에 올인한 병맛같은 찌질함'이 더 낫다는 거다.

매번 그러라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후회 없는 사랑을 해보란 거다. 후회 없는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렇다.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덜 후회하는 사랑'이다. 적어도 한참있다 돌아보면 무난한 여러 번의 사랑보다 그때 그 한 두 번의 진한 사랑이 더 사랑다웠고 나다웠단 걸 깨닫게 된다.


사랑이라는 인생의 낭비는 이처럼 무모하다. 어떻게 해도 사랑을 했다면 후회는 절대적으로 따르게 된다. 사랑은 과연 미친 짓이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현실을 잊어버리는 오로지 그 시절만 가능한 현명한 미친 짓.


이걸 못해봤다면 당신은 인생을 너무(지나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근데, 그냥 정답처럼 잘 사는 것보다 현명하게 낭비해보는 삶이 낫지 않을까? 나는 2030 여러분이 미쳐서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그 사랑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에 청춘을 걸고 내던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죽지 말고) 살아남아서 더 이상 그런 사랑이 무의미해질 때, 손과 발을 오그리며 떠올렸으면 좋겠다.


'나 인생 참 현명하게 낭비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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