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OO 하지 않았으니까.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니까 목적이 없이 우리는 만나잖아. 그 수년 동안 한 번도 넌 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어. 오늘도 마찬가지로."
왜 그랬을까?
인간관계와 내 세계를 확장하고자 한다면, 미래를 다르게 구축하고 싶다면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멋대로 규정한 자의식을 깨부숴야 한다.
최소한 내 콘텐츠(공간·작품·노하우 중 하나라도)가 있고 사람이 잘 웃고 긍정적이며 유머러스하고 질문도 관심을 기반으로 할 줄 알고 묵묵하게 소소한 배려까지 하는 다정함이 보이는 호감형이라면 내가 혼자 있고 싶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찾는다. 찾아낸다. 불러낸다.
'나는 특수케이스야. 사람들이 나처럼 이해할 거란 생각을 하고 대하면 친구가 생길 일은 없어. 작가니까 사람들이 네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그만큼 실망도 컸을 거란 말이지. 네가 진짜로 예의 없는 무개념 인간은 아니라서 난 종종 연락하는 거지. 질문 하나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해서 곁에 친구로 두겠냐?'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좋다. 근데 대부분 자발적 아싸가 아닌 한 친구가 없는 경우는 나만 사랑하고 남은 사랑할 생각이 없는 경우다. 그게 나였다. 돈이나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전쟁통에도 사랑과 우정은 피어난다니깐. 그래, 이건 내가 바뀔 문제였다.
진짜 사회생활을 위한 얕은 관계에서는 '팩트' 위주로만 짧은 대화를 나눠도 충분하다. 피곤하게 모두에게 다 매번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점점 끼리끼리만 만나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성향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 세계를 확장해가고자 한다.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나는 환영한다. 내게 사기 치려는 의도만 아니라면 친구관계를 기꺼이 맺고 싶다. 소통이란 타인의 순수한 의도를 믿는 것에서 시작하니까.
이걸 글로 옮겨 보니 나 정말 심각했던 사람이었네. 단순히 조직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관심을 가지고 눈치껏 관찰하며 센스 있게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 인간이었네.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준 가족과 몇 안 되는 친구에게 평생 감사해야겠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배려를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이 글의 핵심은 관계에 얽매이라는 게 아니다. 필요성을 느끼는 데도 내가 관계에 한계를 느낄 때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해답이 내려질 수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만남은 싫지만 혼자서 외로움은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왕왕 있지 않나.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말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가 한계인지 선택인지는 객관화해봐야 한다.
인간관계, 새로운 관계 맺기는 피곤하고 부질없고 귀찮다는 말, 진심을 넘어 진실인가? 살펴보자.
가족 이외엔 믿을 사람 없어-맞는 말이지만 영속성이 있는 가족 하고도 갈등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갈등해소(화해) 방법과 이후 행동패턴에 따라 관계의 지속성이 또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가족 말곤 아니 가족도 거의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는 힘들어서 나 혼자 행복하게 살 거야 라는 결론을 내린 이라면 나는 100% 존중하겠다. 다만 나랑은 관계 맺지 말자. 그런 이가 이 글을 클릭해 읽었다는 것이 살짝 의심스럽긴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엔 더 반박하지 않겠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타고난 본연의 외로움을 감당해 내는 건 인간의 숙명이지만 사회 속에서 부대껴 가며 어우러지는 것 역시 숙명이라면, 핑계나 변명·합리화를 뛰어 넘어서 이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첫 번째 단계가 자기 객관화라고 나는 생각하여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