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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색 돌멩이 Nov 12. 2024

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15. 천노노즐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W8H4m0VpO70

<따뜻한 겨울 분위기 마인크래프트 BGM & 장작 소리 ㅣ 백색소음 / ASMR / 잔잔한 BGM>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별다줄)


이 말을 떠올리게 된 건 내가 누굴 이기고 싶어서인 건 아니다.

나는 '타인과의 경쟁'이라는 것에는 아주 쥐약이다.


학창 시절 즐기던 게임조차도 사람과 사람이 경쟁하는 종류의 것들은 

게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스타크래프트나 LOL 같은 대전 게임을 하다 보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 '싱글 오픈 월드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게임 속에서 낯선 사람과 부딪힐 일이 없다. 

내가 관계 맺는 것들은 모두 코딩에 지배당하고 있는 껍데기들 뿐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게임 속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게임의 엔딩은 있겠지만, 누가 닦달할 걱정도, 왜 공략대로 안 하냐는 핀잔 없이

스스로 진행해 가기 나름이라 질리기 전까지 즐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조금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다수의 한국 남자아이가 그렇듯 나도 태권도를 다녔다.

2단까지 했나? 아무튼 나름 적응을 잘해서 대회에 나가서 금상도 타곤 했다.

물론 겨루기 대회 말고 품새로.


겨루기는 왠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를 이겼다.'는 쾌감보다는 겨루기라는 행위 그 자체가

주체 못 하고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 때문에 심신이 고통스러웠다.


품새는 어떤가? 동작과 자세 하나하나를 갈고닦으며

때에 맞춰 호흡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아주 심오한 종목이다.

하여간 나는 그런 아이였다.


내 성장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기에 이런 30대 새가슴 아저씨(?)가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타인과 직접적으로 맞부딪힌다는 것은 도저히 즐길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 진학도 경쟁률 높은 in서울에 목메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눈높이에서 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선택을 했고

(물론 수능 올 1등급인데 일부러 하향 지원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서도...)


지방 졸업생이라면 서울로 취직해서 든든~한 직장 다니는 게 보편적인 꿈이겠지만,

샛붉은 노을이 고층 빌딩에 가려진 모습을 보고는 문득 서울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나였다.


젊은이들이 떠나는 촌구석에 돌연 찾아가서 

해본 적도 없던 건축 노가다 일을 시켜달라고 했던 것도,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식기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손재주도 없고 미적 감각도 없으면서 굳이 도자기 빚어보겠다고 발품 팔며 떠돌던 게 나였다.


나같이 사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곁에 두고 있지만 제대로 치는 곡이 하나도 없는 기타와

나름 굳은 마음을 먹고 시작했지만 결국 문을 닫은 작곡가의 꿈.

무대에서 전혀 다른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뮤지컬배우의 꿈.


소중한 인연과 기회들, 그리고 자신감.

그런 건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남은 건, 술 담배와 자기 비하였다.


그래. 나는 성취력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최근엔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을 보고는 꽤 두려워졌다. 

내가 너무 온실 속 화초로 성장한 건지.


이 분은 매일 글을 쓰는 작가인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호전적인 분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칭찬이다.)

https://brunch.co.kr/@d359e7dda16349d/818

또래라서 그런지 그의 글에 비친 내 모습이 더 명확히 비친다.

작가가 말한 대로 나는 테스토스테론이 바닥인가 보다. 




차분한 밤. 술에 취하지 않은 밤 (나도 절단 나기 싫다고!) 가만히 생각한다.


- 그래. 경쟁 사회에 뛰어들지 않아도 돼 돌멩아. 결국 중요한 건

내 삶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그걸 명확히 해야 하는 거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스스로의 성취가 중요한 거야.


나는 내 소설과 내 도자기가 지금 이 시기, 흔들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내 손으로 만든 소설 속 인물들이 술술술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내가 빚은 그릇이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조금 더 즐기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테스토스테론 좀 부족하면 어때.)

차곡차곡 성취를 이뤄낼 때다.


아아-

이제는 먼지 쌓인 저 책부터 좀 읽어야겠다.

스스로에게 일류가 될 수 있게.

그리고 내일도 좀 더 웃으면서 내 삶, 즐겨봐야지.


천재도,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으쌰으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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