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습..'
이파리는 물론 줄기까지 누렇게 바스러지는 원인은 과습이었다.
회색빛의 10평 남짓 작은 투룸 아파트.
초록빛이 있었으면 했다.
반대편 높은 아파트에 가려져 해가 잘 들지 않는 데다 평소 암막 커튼을 치고 어둡게 살았지만,
영양제와 조명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들여왔다.
이 아이에게 '덩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얘가 잘 자라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몇 주가 흐르고 관심이 줄어가던 사이, 줄기 한 부분에서 새롭고 싱싱한 줄기가 1m 가까이 뻗어 나와 있었다. 뽀득뽀득한 새 잎들과 함께.
날 좀 봐달라고, 더 붙잡을만한 곳을 만들어달라고 저렇게 춤을 추면서.
'왜 몰랐던 거지..?'
뒤통수를 맞은 듯 당황스러우면서도
저 아이의 힘찬 생동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곧장 줄기가 잘 뻗을 수 있게 지지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문득 아이의 크기에 비해 화분이 좀 작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간단히 분갈이 공부를 하고 대형마트와 다이소를 돌며 큰 화분과 마사토, 좋다는 흙과 영양제 등을 샀다.
분갈이 타이밍이 얼추 맞았던 것 같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빈틈없이 뿌리가 가득 내려있었다.
요 몇 주간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미안했다.
더 큰 화분에 배수를 고려해 바닥부터 흙과 돌을 잘 선별해서 채웠다.
그리곤 물을 듬뿍 주었다. 영양제도 두 종류씩 꽂아주었다.
'고마워라..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도 넌 날 기쁘게 해 주는구나.'
좁은 거실이 흙과 물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바쁘게 성장의 춤을 추던 덩굴이가.
돌연 말라가기 시작했다.
과습이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나는 고민했다.
흙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봐야 하나.
바로 흙을 바꿔주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걸 할 여력이 나는 남아있지 않았다.
덩굴이가 끝에서부터 누렇게 떨어지며 말라가는 모습을
나는 비참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네가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
저 아이를 보다 문득 떠 오른다.
'키우기 쉽다면서..'
'물을 흠뻑 주라고 했으면서..'
네가 연락이 뜸해지고
그러다 문득 나를 떠나간 것처럼
덩굴이도 그렇게 죽어가는 걸까.
문득 다시 떠오른다.
그 간,
내 입장에서만 너를 생각해 온 게 아닐까.
이기적인 관심과 사랑을 준 게 아닐까.
그러면서 나는 더 큰 사랑을 받길 기대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