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9.
“김나연입니다. 지난번에 발표한 내용은 넘어가고 새롭게 추가한 내용만 빠르게 말씀드릴게요. 교수님 말씀대로 의뢰인의 약혼자가 아타카마 사막에는 여러 번 다녀왔더라고요. 그때 다녔던 경로와 사진들도 첨부했고요. 잡지사와 계약한 내용도 있어요. 다들 한번 보시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의견 주세요."
긴 화상 회의가 끝난 후에 나연은 연구원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연이 회사에 들어와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의뢰인에게는 분명 기계적인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마음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시간 괜찮으시죠? 정은우 씨 케이스 진행상황 공유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편치 않은 상사를 만나야 하는 나연이 서윤 앞에 영 불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여기 앉아서 얘기하죠."
“이번 케이스 이전에 맡았던 것들보다 어렵죠?"
“네. 이전에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메시지들이었거든요. 왜 보내는 지도, 보내야 하는 메시지도 명확했어요. 그리고 보내야 하는 진동도 단순했고요."
나연이 이전에 맡았던 의뢰인들은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 헤어진 연인에게 진동을 보내고 싶어 했다. 잠깐만이라도 내 생각을 해달라는 바람과 나는 때때로 네가 그리우니 너도 같은 마음인지 궁금해하는 마음을 담아 진동을 전달했다. 그중 한 명은 옛 연인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덕분에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요?”
“의뢰인한테 자꾸 마음이 쓰여요. 약혼자가 일 년 가까이 연락이 안 되고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네요. 의뢰인은 약혼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를 찾아왔을 거고요. 제가 의뢰인을 한 번 만나봤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참.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무해한 사람인 거예요. 약혼자가 일부러 안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이상하게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위로받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참 안쓰러웠어요.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혹시 교수님도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나연이 준비하지도 않았던 대답을 술술 내뱉었다. 게다가 서윤에게 선을 넘은 질문까지 했다. 선배들이 그렇게 주의를 주지 않았던가. 사적인 질문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지난번에 회사에서 나가야 했던 사람은 지나치게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서윤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나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도통 모르겠는 사람으로 통했다. 낯을 가리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주고받지만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었다. 직원들의 경조사는 과할 정도로 챙기지만 정작 서윤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는 김나연 씨에게 기술적인 어려움을 물었습니다."
역시나 서윤은 이번에도 정확히 선을 긋는다. 하지만 나연은 서윤의 표정에서 이전과는 달랐던 감정의 동요를 읽어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묻고 있지만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연은 모르는 척 재빨리 준비된 이야기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생각한 게 있는데요. 실종자는 아타카마 사막에 갈 때마다 꼭 천문대를 배경으로 천체 사진을 찍었어요. 워낙 천문대가 많긴 한데 항상 가는 곳이 있어요. 현존하는 최대 전파 천문대인 ALMA고요. 지금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닫혀 있는 상태지만 올해 3월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합니다."
나연이 서윤에게 사진 한 장을 내민다. 천문대에서 출발한 거대한 레이저 줄기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레이저로 만든 인공별을 통해 대기 왜곡 정도를 계산해서 정확한 상을 얻기 위한 테크닉이었지만 사진 속에서는 오로라 못지않은 현란한 우주쇼가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정은우 씨에게 보냈던 마지막 사진들 중 하나예요. ALMA에서 찍은 건 아니지만 아타카마에 있는 또 다른 천문대에서 찍은 사진이고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아레시보가 붕괴했잖아요. 그래서 여러 곳에서 거대 망원경에 대한 특집 기사나 영상을 제작하고 있었어요. 정은우 씨의 약혼자가 살아있다면 ALMA로 오겠죠. ALMA가 다시 움직이길 기다렸을 거예요. “
“좋네요. ALMA에서 시작하는 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