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7.
2020년 12월 23일
“안녕하세요. 저는 진동 서비스의 대표 단서윤이라고 합니다. 서비스와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통화 괜찮으신가요."
다시 연구실로 돌아온 서윤이 몇 번을 망설임 끝에 보고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서윤의 목소리를 확인한 은우가 잠시 말을 하지 않는다. 은우 역시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대답을 한다.
”안녕하세요. 저 09학번 은우예요. 기억하시죠. 직접 통화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떻게 은우는 기억을 하냐고 물어볼 수가 있을까. 설마 서윤이 정말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전화로 전달되는 게 오직 말 뿐이라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서윤은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여기가 우리 회사인 줄 알고 있었나 보네. 담당자가 궁금한 점이 많은 모양이더라. 조만간 다시 연락이 갈 거야.”
확인하고 싶은 내용을 확인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없어서 말을 못 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가 없었을 뿐. 그렇지만 그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줄게."
왜 은우는 서윤이 앞에 있을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연락을 할 때에는 더없이 좋은 얼굴로,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마워요.”
둘 다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을 깬 건 은우 쪽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번 서비스랑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저한테는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며칠 전에 오빠가 한 웨델물범 연구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몇 년 전 기사이긴 한데 어미를 잃은 새끼 웨델물범의 초음파를 증폭시켜 어미를 찾아준다는 내용이었어요.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가 궁금해서 논문을 찾아봤는데 기사랑 전혀 다른 논문이더라고요. 어미 찾기 같은 내용은 없고, 초음파를 증폭시켜 멀리까지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만 있었어요. 저는 물범에게 엄마를 찾아줬는지, 새끼 물범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어요.”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서로의 화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서둘러 말하지도 답변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 실험 실패했어. 그래서 후속 기사가 안 나오고, 논문 주제도 바꾼 거고.”
대답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서윤에게는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실험을 하긴 했나요? 어미를 찾아준다는 실험이요.”
은우의 이번 물음엔 휴지가 없었다. 은우가 진작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은 결국 이거였을 것이다.
“했어. 한 번뿐이었지만.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실험을 하려고 새끼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었어. 정말 처음에는 어미를 찾아주고 싶었어.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고. 그런데 연구자가 여럿이었는데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어. 넌 알겠어?”
서윤도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서윤의 물음이 마치 은우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혹시 나를 의심하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억울한 마음으로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어미가 찾아오지 않았겠죠.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려진 새끼라서.”
왜 은우는 늘 서윤의 마음을 덜컹이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서윤도 차분한 말투로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그런 쪽으로는 예상했어. 어미가 죽었다면 이 실험은 의미가 있을까. 잃어버리지 않고 버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니었어.”
서윤이 말을 잇기 전에 한참 동안 생각을 한다. 은우가 먼저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은우는 말하지 않는다.
“은우야.”
갑자기 서윤이 은우를 부른다.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면 전화기를 통해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고 은우 쪽으로 고개를 돌릴 만큼 , 서윤답지 않은 큰 소리였다.
“내가 하는 말이 너한테만 들리는 거 아니었잖아. 왜 그 생각을 안 했을까. 이 진동이 너한테만 가는 게 아닌데, 왜 새끼 물범이 내는 초음파가 다른 물범들한테는 어떻게 들릴지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다른 어미들이 다가왔어. 마치 모두가 엄마가 된 것처럼. 어미를 잃은 새끼 물범을 품어주고 보살펴 주기 시작했어.”
서윤은 이제 은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은우에게 해주고 싶었던, 그러나 해 줄 수가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은우야. 세종 기지에서 어미 잃은 새끼를 봤어. 그냥 둘 수가 없었어. 그대로 두면 살 수 없었을 거잖아."
은우는 서윤의 마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 마음만큼은 같았다.
“알아요. 그래서 이런 서비스를 시작한 거겠죠. 응답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에요. 기사를 보고 나서야 오빠가 만든 회사라는 거 알게 되었어요."
“은우야. 이런 식으로 다시 연락하게 될 줄은 몰랐어.”
2009년 3월.
“저 여기가 과사무실 맞나요? 여기 이거 제출하면 되나요?”
“맞아.”
서윤이 복사를 하며 은우를 보는 둥 마는 둥 성의 없게 대답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계셔서요. 혹시 이거 전해주실 수 있어요?”
“나도 갈 건데.”
“아.. 그럼 두고 갈게요. 근데 혹시 봉투 같은 거 있으세요? 이거 넣으려고 하는데.”
“그거 신입생들 그냥 다 저기 올려두고 갔어. 너도 그냥 내. 내기 싫으면 안내도 되고. 혹시라도 나중에 학교 안 나오는 애들 생기면 연락처가 필요라니까 받아 두는 거야.”
“알겠습니다.”
은우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자기소개서를 뒤집어 놓고 나간다.
‘이렇게 두고 가면 이면지인 줄 알잖아.’
서윤이 마지못해 은우가 올려놓고 간 종이를 뒤집어 놓으려다 멈칫한다. 서윤은 눈길을 주지 않은 척, 보지 않은 듯 은우의 것을 이미 쌓여있는 자기소개서 사이에 끼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