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고비 Oct 11. 2023

정은우, 서울

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5.

은우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어딘가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기억이 또렷하게 날 무렵에는 병원에서. 엄마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은우와 지우를 살뜰하게 챙겼다. 그러니까 은우의 기억 속 우리 가족은 세명이었던 셈이다. 병원에서 삼 년을 누워있었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은우는 13살, 지우는 10살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엄마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은우도 지우도 덩달아 울었을 뿐이다. 장례 마지막 날 엄마가 장례식장에서 정리할 것이 있다며 은우에게 지우를 데리고 집에 가서 자라고 했다. 둘만 있는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자매를 엄마가 불러 세우더니 둘이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꼭 안아 주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은우가 지우를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엄마가 사라지고 없었다.


발인은 해야 하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아버지의 형제들의 손에 이끌려 어찌어찌 일을 치렀는데 아무도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조의금을 들고 사라진 엄마를 비난하고, 우리를 누가 맡을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길어진 이야기 끝에 결국 작은 아버지가 은우와 지우를 데려가기로 하시면서 모두 헤어졌다.


그때 작은 아버지가 결혼하신 지 일 년은 넘었을까. 돌이 안 된 조카가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아버지는 은우와 지우를 딸처럼 키워주었고 작은 어머니도 최선을 다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찍이 결혼해서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변에는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한 번은 지우가 학교에 엄마 칸에 작은 어머니 전화번호를 적어서 낸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 전화를 받은 작은 어머니가 본인은 지우 엄마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보호자 한 칸은 그냥 빈칸으로 냈다. 아버지 칸도 작은아버지라 고쳐 써야 했지만 한 칸이라도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살면서 매 순간 엄마에게 연락이 올 거라 기대했다. 우리와 다시 가족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 만나면 왜 우리를 버렸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편지 한 장을 남기지도 않고 사라져 버린 엄마에게 원망의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오기는커녕 전화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은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은우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있던 Jay가 은우를 안아주었다.

“은우야. 말해줘서 고마워.”

“이제는 괜찮아. Jay. 지우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나도 말한 것뿐이야.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

은우가 Jay를 쳐다보며 괜찮다는 눈빛을 보낸다.

“아니. 넌 이제 괜찮을지 몰라도 10살 꼬마였던 정은우는 아직이야. 이번에는 꼬마 은우를 안아줄 거야.”


Jay가 은우를 다시 한번 안아주자 그제야 은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한참 동안 소리 내지 않고 우는 은우를 안아주며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Jay가 은우의 눈에 맺힌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은 우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줘. 나는 네가 고아 거나 아니거나 전혀 상관이 없어.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정말 좋아.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 “

Jay가 마지막 말을 하지 않은 채로 은우를 바라본다.

“은우야 나랑 결혼해 줄래?”

이전 04화 일주일은 짧고, 일주일이 전부였으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