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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고비 Oct 12. 2023

웨델 물범

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6.

2020년 12월 23일


나연이 서윤의 연구실 앞에서 숨을 크게 쉬었다. 단서윤. 극단의 T, 송곳같이 뾰족한 피드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수강신청이 마감되고 대학원방에는 지원자가 넘치는 능력 있는 교수. 그러나 모든 수식어 중에서도 신입 사원인 나연에게 가장 와닿는 수식어는 바로 교내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 진동’의 대표였다.


“교수님. 이번에 제가 진행하기로 한 케이스 공유해 드리려고 합니다."

은우의 케이스를 맡은 나연이 서윤의 연구실에 들어와 서윤에게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던 서윤이 나연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칠레? 그것도 추정할 뿐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거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마찬가지고요."


나연이 대답을 하는 동안 서윤의 전화기가 계속 울리고 있다. 나연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차였다. 어차피 보고서만 전달하면 서윤은 고민을 시작할 것이니 전화 핑계를 대고 어색한 순간을 탈출하고 싶었다.

"교수님 전화 계속 오는데 받으십시오.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읽어봐 주시고요.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서윤의 말 한마디에 나연의 표정이 밝아진다.

“네. 교수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금요일답게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인데도 연구동이 텅 비어 있었다. 통화를 끝낸 서윤은 잠시 망설이다 짐을 챙겨서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노트북까지 집어넣고 보고서를 집어넣을까 고민하며 선 채로 훑어보던 서윤이 갑자기 가방을 내려놓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보고서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23일


수업을 마치고 노트북을 정리하고 있는 은우에게 지수가 쪼르르 달려온다. 평소에도 수업 내용이나 과학 관련 뉴스가 있으면 은우에게 묻거나 의견을 구하는 학생이었다.

“선생님 제가 구글링 하다 찾았는데요. 웨델 물범 연구에 대한 기사인데 제가 선생님 보여드리려고 프린트해 왔어요. 이거 보세요. 엄청 귀엽죠. 이 녀석들도 고래들처럼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나와있어요. 근데 여기 연구팀에 우리나라 과학자 있는 거 보이죠. 이 분 샘이랑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더라고요. 샘이랑 나이도 비슷하고.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지수는 아마 쉬는 시간 내내 교탁에 붙어있을 것이다. 수업이 촘촘하게 있는 은우에게 소중한 쉬는 시간이지만 하루종일 이 시간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말을 붙이지 못할 수 있는 아이인지라 자리를 뜨기가 어려웠다. 지수는 한참 동안 기사에 대해, 오늘 배운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 종 치네. 나 샘이랑 더 얘기하고 싶은데 점심시간에 가도 되나요? 샘 이거 가져가서 읽어보세요.”

복도에 서 있는 다음 교시 선생님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나오며 지수가 준 프린트를 읽어본다. 영어기사라 한눈에 내용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굵은 글자의 헤드라인으로도 어떤 연구인지 짐작이 가능 헸다.

‘초음파를 증폭시켜서 어미를 잃어버린 새끼 물범의 파동을 전하려고 한다. 어미가 찾아와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기사를 천천히 읽던 은우가 무슨 생각인 건지 급히 ’ 진동‘ 서비스를 다시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홈페이지 하단으로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던 은우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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