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고비 Oct 11. 2023

오로라 댄싱

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3. 

2018년 12월 23일.


Jay는 정말 이런 곳에 한식당이 있을까 싶은 곳에서 한글 간판을 찾아냈다. 한국 음식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의심한 은우가 머쓱하게도 Jay는 누가 봐도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식당을 찾은 사람이었다. 한글로 된 메뉴판을 잠깐 보더니 어떤 단어보다도 또렷한 발음으로 빠르게 주문을 했다.


“한국 음식 좋아하나 봐."

“그럼. 엄마가 한 끼는 꼭 한국 음식으로 해 주셨거든. 주말마다 한인마트에 있는 한국음식 코너에서 외식도 하고. 제대로 된 한국 음식 진짜 오래간만이야."

“크리스마스인데 가족들이랑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해 주시는 한국 음식을 두고 여기는 왜 온 거야?”

“집에 아무도 안 계시거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건 더 씁쓸하잖아."

“가족들도 여행 중?”

“맞아. 먼 여행 중이시지.”


Jay는 화제를 바꾸고 싶었는지 은우에게 핸드폰 속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옐로나이프에서 찍은 사진이야. 사진을 찍은 날이 Kp 지수가 10년 중 최고였던 날이었어. 밴쿠버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태양 활동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바로 공항으로 달려갔거든.”

Jay의 사진 속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이 찍히지 않았는데도 사진 속 작은 텐트의 불빛 때문인지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이 오늘의 천체사진으로 뽑혔어. 나사의 메인 화면에 오르고 나니까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나만 내 사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여기가 너한테는 특별한 곳이겠네.”

“맞아. 여기 올 때마다 인생이 달라졌으니까. 너도 여기서 인생이 달라질지 몰라."

”기대할게. 옐로나이프의 마법 같은 건가."


Jay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11학년 겨울방학 때 옐로나이프에 처음으로 와 봤어. 그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일부러 날짜를 잡으신 거였더라. 오자마자 오로라 서브스톰을 봤어. 삼일동안 있었는데 그중 이틀 동안 서브스톰이 있었어. 이걸 눈으로만 보고 기록을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천체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 사진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는데 나중에는 괜히 알려줬다고 그러시긴 했어. 12학년이 되면서는 대학도 안 가고 천체 사진만 찍겠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하도 울어서 대학을 가긴 갔는데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 계속 사진만 찍었거든."

자신을 쳐다보는 은우의 맑고 깊은 눈을 바라보며 Jay가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길게 꺼내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 나도 처음에는 두려웠어. 아무것도 안 될까 봐.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많더라고. 꼭 뭐가 되어야 되나 싶었어.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사람들이 좋아요 눌러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거든. 촬영하러 안 다닐 땐 접시도 닦고 서빙도 하고. 사진으로 돈을 벌기까지는 정말 오래 걸렸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쉽지는 쉽지는 않더라고. 넌 뭐가 제일 하고 싶어?"

은우는 Jay에게 말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미루게 된다고. 그렇게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은우가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자 Jay는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그럼 오늘은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오늘은? 오로라가 보고 싶어. 네 사진을 보니까 꼭 봐야겠어."

진심이었다. 때로는 말을 뱉고 나서야 진심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은우는 꼭 오로라가 보고 싶었다. 진짜냐고 눈빛으로 묻는 Jay에게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진심이야. 진짜로 원해."


아홉 시에 나타난 픽업차량 안에는 어쩐 일인지 가이드와 Jay 뿐이었다. Jake는 사람들이 투어 대신 한 곳에 머물러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오로라 빌리지에 갔다고 했다. 어제 새벽 두 시까지 차를 타고 다녔던 은우도 오늘은 어딘가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무거웠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안 보이지만 밤새 변할 수도 있어. Jake가 다른 손님들이 없으니까 계속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괜찮아? 오늘은 진짜 느낌이 좋대. 지수가 높진 않지만 뭔가 시작될 것 같은 하늘이야.”

“물론. 나는 오늘 꼭 오로라가 보고 싶어"


가이드는 하늘이 심상치 않다며 빨리 이동을 하자고 했다. 이동하는 차에서는 Jay의 SNS 속 사진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사진을 찍었던 장소, 그날의 분위기를 설명하며 Jay는 신이 났고 은우가 어떻게 찍은 사진인지 알아볼 때마다 과하게 놀라는 건 보너스였다.

“천체사진인데도 망원경을 쓴 사진이 하나도 없네.”

"한 번에 알아보는구나. 눈에 보이는 대로 남기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보는 하늘은 실재 같지가 않잖아. 내 사진 속에 하늘을 바라보던 그날의 분위기, 공기가 담기면 좋겠어."

”사진도 너를 닮았네. 다들 천체 사진 찍는다고 하면 커다란 망원경을 먼저 떠올릴걸. 이렇게만 찍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텐데 너도 진짜 대단하다."

”우리 엄마가 너랑 똑같이 말씀하셨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기어이 하고 마는 사람이라고."


운전을 하던 가이드가 차를 멈추더니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든다.

"내리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 믿어봐. 곧 시작될 것 같은 하늘이거든.”

Jay가 분주하게 카메라를 설치한다.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에도 은우는 밖에 나와 Jay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없는 눈밭에서 오로라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영하 40도씨의 날씨인데도 빌려 입은 방한복과 방한화 덕분인 건지 따뜻한 차 안에서 덥힌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광경 때문인지 춥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굳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걸 이렇게까지 봐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이렇게 거대한 스크린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색깔의 빛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넘실거리는 오로라는 그 순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커다란 녹색 커튼이 춤을 추며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듯 일렁였다.

Jay가 멍하니 서 있는 은우의 손을 잡아채더니 소리를 지르며 눈밭을 뛰어다녔다. 어느새 Jay의 손에 끌려다니던 은우도 소리를 지른다. 하얀 눈밭에 둘의 발자국이 같이 찍힌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Jay가 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하고 싶은 일 하나 했다. 너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

Jay는 이제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다. 은우가 멍하니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은우의 핸드폰에 오로라 촬영 앱을 깔아주고는 삼각대를 건넨다.

”천체 사진 찍어 봤지? 오늘은 오로라가 밝으니까 노출은 길게 주지 말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방금 전까지 아이처럼 뛰어다니던 사람이 맞나 싶게 Jay는 금방 다른 사람이 된다. Jay는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멈춰 서서 오로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밖에 있어 추워진 은우가 돌아가자며 Jay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듣지 못했다. 결국 Jay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가자. Jay.”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은 Jay가 돌아보며 은우를 안더니 은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너무 춥다. 그동안 사진 찍느라 아까운 걸 놓쳤던 것 같아. 오늘은 그냥 보고만 있고 싶었어.”

Jay와 은우가 서로에게 기대어 오로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시간이 한참 지나 오로라가 사라지자 주변은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이제 별이 쏟아질 듯 보인다.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랑 아빠도 너처럼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어. 뭘 먹자고 해도 우리는 아무거나 좋다고, 음식을 고를 때도 가격을 먼저 보고. 다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그래.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항상 이것저것 다 시켜놓고 두 사람 얼굴을 봤어. 뭘 먹을 때 제일 좋아하나 싶어서. 있더라고. 정작 본인들은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찾아드리고 싶었어."

“작년에 엄마랑 아빠가 같이 퇴근하던 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하셨어. 워낙 큰 사고여서 지역 뉴스에도 났고. 밤새 촬영을 하고 잠을 자다가 나중에 뉴스를 보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봤는데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통화가 많이 와 있었어. 그제야 엄마랑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무하고도 통화가 안 되는 거야.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깨어나지 못하셨어.”


Jay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은우의 시선을 느낀 Jay가 괜찮다는 듯 은우의 등을 쓸었다. 하지만 이번엔 은우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은우가 Jay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가 추워서 그래. 잠깐만 이렇게 있어 줘.”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가장 필요했던 건 곁을 지켜주는 사람, 체온을 나누어줄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용한 눈밭에서 안고 있는 두 사람에게 서로의 심장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Jay! "

은우가 부르는 소리에 Jay가 은우와 시선을 맞춘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했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줄래? “

“뭐든지. “

Jay가 은우의 귀에다 대고 대답을 한다.

”너한테 키스해도 돼?"

눈을 보고 물어보는 은우에게 Jay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춘다.

이전 02화 Jay, Yellowknif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