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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고비 Oct 11. 2023

진동 전달 서비스

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1.


2020년 12월 20일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우주적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면 삶보다 죽음이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주에서 생명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대부분의 물질은 죽음의 상태로 존재하고 살아 있는 상태는 아주 잠깐, 그러니까 잠시 머무르는 상태일 뿐이에요. 그러니 어찌 보면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자의 강연 영상을 보내 준 친구는 분명 은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은우가 좋아하던 과학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들려준다면 은우의 마음에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 배려였을 것이다.


알리려 한 적은 없지만 은우의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대부분은 은우를 위로해 주려는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누군가의 행동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선을 넘은 관심이기도 했다. 은우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슬픔에 대해 베푸는 어떤 선의가 상대방에게는 꼭 선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중이었다.


“Jay가 보고 싶어."

심지어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의 말은 선한 의도마저 없을 때가 있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감당 못할 감정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아 하지 못했던 말을 지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렸다.

”언니. 지금도 기다리는 거지?”

"아니."


은우가 이렇게 건조하게 대답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동안 은우에게 기다림과 포기 중 쉬운 쪽은 기다림이겠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언니 넌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나는 아직 Jay 기다리거든. 나는 뭐라도 해 볼 거야."

지우가 울음을 참으며 말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뭘 할 수 있는데. 뭘 했어도 마찬가지였어."

”아니. 나는 내가 계속 기다릴 필요가 있는지 그게 궁금해서 미칠 것 같거든.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이제 기다리지 말라고 하던지. 언니 너는 안 궁금해? 네가 정말 다 잊었고, 기다리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거면 내가 할게. 정해. 누가 할까."


지우가 준 링크에서는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다는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었다. 예약금을 결제하고 연락처를 남기면 전화해 주겠다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해 보였고 그에 비해 달려 있는 후기들은 이상하게 길고 정성스러웠다. 은우가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고 망설이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은우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은우 님의 ‘진동’이 예약되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상담원이 전화를 드릴 예정입니다.‘


2020년 12월 22일


“저희 진동 서비스를 예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상담원 김나연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희의 ‘진동‘ 서비스에 대해 안내해드리려고 해요. 질문이 많으실 테니 설명을 들으시면서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희는 정은우 씨의 진동을 전달할 거예요. 찾고 계시는 분에게 반드시 진동이 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저희의 일이에요.”

상담원의 전화는 여느 콜센터의 상담과도 같지 않았다. 그저 친절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영업을 하려는 절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담원이 아니라 숙련된 강사로 느껴질 정도로 능숙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고 은우의 질문을 기다려 여유 있게 답변을 했다.


“응답이 온다는 거죠?”

“저희 서비스를 이용하셨던 분들이라면 아마 여러 경로로 연락을 하고자 했을 거예요. 정은우 씨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서비스를 이용하셨던 많은 분들이 찾고자 하는 분들이 주는 신호를 받으셨다고 이야기하셨지만 저희도 꼭 저희의 진동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백 퍼센트 확신을 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후기를 읽으신 것처럼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셨고 지금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주변 분들에게 추천을 해주시더라고요."


"만약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을까요?"

내내 여유 있던 상담원의 말투가 조금 달라진다.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찾고 있는 상대의 생사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은우의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일 것이다.


"저희는 죽어 있어도 진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생명이 사라졌다는 것과 진동을 받아들이는 물질이 사라진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니까요. 저희는 진동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고 있어요. 그 사람을 이루고 있던 입자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수는 없고, 진동에 반응하지 않는 입자는 없으니까요. 이런 과정들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여기서 멈추시는 게 좋습니다. 예약금은 환불해 드려요."

“아니요.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어요."


”저희는 파동의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메시지의 종류에 따라 상대에게는 바람의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고 가로등 불빛이나 네온사인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상대방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파동이어야 하기 때문에 메신저가 상대방이 공유했던 경험 중 어떤 진동을 사용해야 할지를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적합한 진동이 없다면 서비스를 할 수가 없고요. 그러니까 메신저가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분과의 추억에 대해 알려주셔야 해요. 사진이나 영상 정보가 있다면 최대한 공유해 주시고 이후에는 저희가 서비스가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파동의 형태를 선택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게 되는 거고요."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잊으려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을 되살리는 게 더 쉽다. 상담원의 말을 모두 다 믿기 때문은 아니었다. 은우는 잊은 척 지내는 것보다는 추억을 복기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저 해보고 싶어요."

은우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상담원이 은우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한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많은 분들이 저희 서비스를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희가 의도하는 건 그런 감정적인 위로는 아닙니다. 설명을 읽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메신저가 보내는 진동을 증폭시켜 주는 기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예요. 저희 서비스는 증폭과 관련된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회사는 한국기술대학교의 천문학과 대학원 내에 있습니다. 저희 교수님께서 대표로 계시고, 저도 연구원이에요. 그래서 과정 자체가 굉장히 기계적이라고 느껴질 수가 있어요. 따뜻한 분위기를 기대하셨는데 실제로는 아니라서 중간에 그만두신 분들도 계시고요. “


애초에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어설픈 공감보다는 차라리 기계적인 반응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저는 괜찮아요.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그럼 저희가 보내드리는 설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시고,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해 주세요. 제 직통번호 알려드릴게요. 그럼 상담 예약하면서 남겨주셨던 내용만 잠깐 확인할게요."


”찾으시는 분 이름이 Jay kim이 맞나요?”

“네.”

“마지막으로 연락하신 날짜와 장소도 말씀해 주세요."

”2020년 3월 10일. 칠레 아타카마 사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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