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정 Jul 24. 2024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엄마를 지키는 일은 나를 망가트린다

해가 지면 집 안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졌다. 사리분별이 가능해진 나이쯤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차라리 귀가 멀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엄마의 술주정은 나를 미치게 했다. 날이 밝으면 잘 차려진 밥상과 함께 맥락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건네는 그녀의 따뜻한 온기는 토악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이렇게나 태연하다니. 역시 정신이 맑은 인간은 알코올 중독자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던 엄마의 입이 굳게 닫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도 그날의 충격을 쉽사리 털어내지 못했다. 제 몸으로 열 달을 품었던 아이가 휘두른 주먹에 처참히 쓰러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그저 가만히, 작아진 어미의 등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한 번도 바람 안 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바람피운 놈은 없다'든지, '개 버릇 남 못준다'같은 것들 말이다. 불변의 법칙처럼 구전되는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오빠의 폭력 역시 한 번에 그치지 않았으니까.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만취한 상태로 귀가해 엄마와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고 말았다. 160cm도 채 되지 않는 나는 그 힘에 맞서기엔 너무도 약했다. 이 악행을 함께 감당해 줄 구원자가 필요했다.


경찰서에 신고했다. 112에 문자를 했었던가, 전화를 걸었던가.. 희한하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곧이어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안전히 마무리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서둘러 문을 열었고, 경찰복을 입은 남자 두세 명이 "신고받고 왔다"며 집으로 들어왔다. 단번에 가해자를 파악한 그들은 오빠를 방 안에 데리고 갔고, 그는 쉬이 진정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분했는지 양팔을 붙잡히고도 쉴 새 없이 바닥에 침을 뱉고, 엄마가 있는 거실 쪽을 노려보며 욕을 쏟아냈다. 정말이지, 어쩌다 저런 망나니 새끼가 됐을까. 제정신에 보고 있기 괴로운 꼴이었다.


경찰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이어가던 그때, 엄마의 입에서 기막힌 멘트가 튀어나왔다.


아무 일도 아니니까 가세요. 그냥 가시라고요


자식이 부모 앞에서 주먹을 내보인 게 아무 일이 아니냐며, 정신 차리라는 내 고함에도 그녀는 두 귀를 막아버렸다.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억지를 부리더니, 기어이 그들을 내쫓아버렸다. 형제의 폭행과 어미의 입막음. 그 속에 홀로 놓인 아이를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테지. 경찰들은 나를 따로 불러내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다시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쥐어줬다.


문을 꽁꽁 잠가버린 엄마는 내게 화를 냈다. 미쳤냐고. 오빠를 전과자로 만들 셈이냐면서. 게다가 군 복무 중인 신분 상태로 죄를 지으면 인생이 아작 날 거란다. 어안이 벙벙했다. 술을 쳐마신 것도, 엄마를 팬 것도 오빤데, 정작 비난의 화살은 내 몫이었다.


그 부릅뜬 원망의 눈빛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능력한 아비와 강압적인 어미,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딱지, 돈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집안 환경. 그 모든 것에 담대히 맞서던 내가 한없이 무력해지던 순간. 산산이 부서진 그날의 조각들을 모아 나만의 진리를 새겼다.


엄마를 지키는 일은 나를 망가트린다고.

그러니 두 번 다시 엄마를 돕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이전 05화 엄마는 맞았고, 아빠는 때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