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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l 19. 2024

엄마는 맞았고, 아빠는 때렸다

내게서 절대 잊히지 않을 그날

"저 새끼는 군대도 안 갔다 왔나?"


한국 사회에서 탐탁지 않은 남자 성인을 봤을 때 흔히들 뱉는 멘트다. 군대를 가면 철이 들것이라는 생각. 그 뿌리 깊은 편견은 내 엄마도 갖고 있었다. 아들과의 갈등이 깊어질 때마다 "얼른 군대나 가서 정신 차리고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일삼았다. 대학을 자퇴한 그는 곡장 입대를 해야 했지만, 가족들의 오랜 바람과 달리 사회복무요원으로 발령받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를 여유로이 출퇴근했고, 그마저 매일 늦거나 온갖 핑계를 대가며 결근하기 일쑤였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리 만무했다.


짙은 알코올 냄새를 잔뜩 안고 귀가하는 날도 잦았다. 밖에서 대체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어떤 날은 남의 차 사이드미러를 박살 냈다며 연락이 왔었다. 엄마와의 싸움이 길어질 때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방문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새삼 느꼈다. 제대로 된 운동 한 번 하지 않고 자란 사람일지라도, 남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분노가 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주먹과 비슷한 형태의 구멍이 생겼다. 나는 완전한 독립을 하기 전 날까지, 뭉개진 방문을 바라보며 그날의 소란을 떠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번갈아가며 술에 절여 오던 두 사람이 동시에 만취해 귀가한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오빠는 헤드셋을 꼈고, 엄마는 그를 향해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해 댔다. 둘의 불협화음이 점차 고조되었고, 방문을 부수었던 주먹이 기어이 제 어미에게 휘둘러지고 말았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거실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술에 찌든 엄마는 방어력을 잃었다. 풀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오빠는 무기력한 그녀의 등짝을 몇 차례 더 찍어 내렸다. 놀란 내가 엄마를 감싸 안으며 '그만하라' 소리치자 씩씩거리는 숨을 몰아 쉬더니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눈에서 두려움과 설움이 뒤섞여 줄줄 흘렀다. 상황을 중재하던 나 역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엄마가 들으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자식이 부모를 구타했다는 충격과 함께 오빠를 향한 일말의 측은지심이 싹텄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얼마나 참았으면 저럴까' 아마도 그날 밤, 우리 셋의 속내는 결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거다.


들썩임이 사그라들 즈음, 엄마는 헤어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니 아들 무서워서 못 키우겠으니까, 네가 데려가서 키워라."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질겁한 아빠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양 옆에 이혼한 와이프와 아들을 두고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둘의 감정선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흥분한 오빠가 엄마를 향해 다시금 몸을 일으켰고, 그 모습을 본 아빠는 아들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처음이었다. 그가 자식에게 손을 댄 건. 책임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돈벌이에 무능한 아비였지만, 한창 예민하던 우리의 사춘기 시절에도 언성 한 번 높인 적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아빠에게 꿀밤 한 대 맞아본 적 없던 나는, 오빠의 주먹질보다도 그의 분개한 모습에 더욱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룻밤 사이에 이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두 번의 손찌검이 오갔다. 엄마는 맞았고, 아빠는 때렸던 날. 내게서 절대 잊히지 않을 바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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