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정 Jul 26. 2024

지옥 탈출 넘버원

누군가 죽는대도 난 여길 나가야겠어

그날 이후 그렇잖아도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던 집구석에서 더욱 벗어나고 싶어졌다. 대학만 졸업하면 이 지옥을 탈출하리라. 독립에 혈안이 되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가까운 거리의 회사는 가감 없이 재꼈다. 집에서 다니라고 할게 뻔하니까. 가족의 품을 떠날 수 없는 취업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 우리 집을 기준으로 가장 반대쪽에 위치한 곳.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지. 당장 출근하겠다 답했다.


'시집가기 전까지 절대 떨어질 생각 없다'던 엄마는 야근이 잦을 거라는 내 거짓말에 속아 마지못해 출가를 허락했다. 몇 평쯤 되었을까. 싱글 침대 하나, 낮은 선반 하나, 헹거 하나를 두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공간. 그 조그마한 원룸에 혼자 몸을 뉘었던 첫 날밤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 방문이 예고도 없이 벌컥 열리지 않음이, 친구와 자유로이 통화할 수 있음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그날에서야 알았다. 남들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데. 글쎄, 나는 가족에게서 달아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딱 하나. 체한 것처럼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엄마와 오빠가 단 둘이 지내게 됐다는 것. 그 사실은 '혹시 나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져다줬다. 애써 두 눈을 감았다. 난 절대 엄마를 돕지 않을 거니까. 설사 둘 중에 하나가 맞다 죽어버린대도, 그건 내 탓이 아니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소쿠리 안에서 함께 버무려지지 않으려면 외면 밖에 답이 없었다. 내가 지켜내야 할 존재는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마음에서 엄마를 버렸다.




독립하기 전, 지금의 신랑과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던 때. 나는 그의 자취방에서 자주 잠에 들었다. 어느 날은 그가 회사 워크숍을 갔는데도 그곳에 혼자 누워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먼 길을 걸어 우리 집 앞에 바래다 줄 때면, 내가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참을 반복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헤어지곤 했었다. 착하고 자상한 그는 "부모님 걱정하시겠다"며 자꾸만 나를 집에 보내려 했고, 나는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며 매일 떼를 썼다.


그는 몰랐을 거다. 내가 왜 주인도 없는 빈 집에 혼자 잠을 청했는지, 기껏 현관문 앞까지 와놓고 왜 다시 돌아 나가겠다는 건지, 왜 그리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안달이었는지, 이렇게 쉴 새 없이 웃던 내가 저 문이 열리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이전 06화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