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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Aug 02. 2024

딱 죽기 좋은 날

벙어리가 되어 버린 엄마

화장터로 향하기 전, 빈소 옆 공간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할아버지와의 영원한 인사. 아비가 누워 있는 관을 앞에 두고 자식들의 어깨가 하나, 둘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절만 남은 상황. 누군가 몽롱한 혓바닥으로 개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이 씨발새끼들!!!!


영결식장 안의 모든 눈동자가 허공을 돌아다니다 한 곳에 모였다. 내 오빠의 주둥이로. 놀란 친척들이 "할아버지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며 제지했지만, 밤새 술독에 빠져있던 망나니는 미쳐 날뛸 뿐이었다. 보다 못한 사촌 오빠들이 힘을 써 끌어내기 시작했고, 악에 받친 그는 태어나 배운 모든 쌍욕들을 나열했다. 상스러운 고함소리가 고요한 장례식장에 울려 퍼졌다. 쑥대밭이 된 영결식을 뒤로하고 그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미친 새끼, 또 저 지랄이네." 그 자리에서 놀라지 않는 건 딱 한 사람, 나뿐이었다.


제 아비의 죽음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엄마의 심장에 또 다른 칼이 꽂혔다. 그럼에도 장례는 무사히 치러야 했기에, 시들어가는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다음 일정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 안, 엄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창 밖만 바라봤다. 초점 잃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멎을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이른 새벽부터 울린 문자 알림음.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정아 이게 무슨 말이고?"

"엄마 대출받은 거 이자 내라는 내용 같은데?"

"무슨 대출..? 난 대출받은 적이 없는데..."

"받은 적이 없는데 이런 문자가 왜 와?"

"이 은행은 아예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제대로 확인한 거 맞나?"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옆에 두고, 엄마는 초조한 듯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그리고 이내, 울먹거리며 말했다.


"록이가 내 명의로 대출받았는갑다..."

"뭔 소린데? 오빠야가 엄마 명의로 어떻게 대출을 받노?"

"엄마가 컴퓨터를 못 하니까 연말정산 대신 해줬거든.. 그거 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캐서 내가 지줬었는데.. 그걸로 대출 받았는갑다..어떡하노....어떡하노 정아..."


엄마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식이 부모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꼴을 보고도 측은함을 느꼈던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내 어미는 강제로 단절된 경력을 딛고 일어나, 남편이 도박으로 날린 '빚'을 대신 갚으며 자식 둘을 겨우 건사해 낸 사람이었다. 우리를 키우는 동안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틈이 날 땐,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라도 아이들의 뱃속을 채워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암담한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자란 아들 새끼에게 제대로 당했다. 이제야 숨 좀 쉬고 사나 했더니, 본 적도 없는 액수의 돈이 '빚'으로 남아 그녀를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화장터에 도착한 엄마는 벙어리가 됐다. 할아버지의 시신이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미친 사람처럼 통곡하기 시작했다. 산산조각 나는 아비의 뼈를 보며 그녀의 억장도 부서지고 찢어지길 반복했을 거다.


아이처럼 목놓아 우는 엄마를 보며 왈칵 겁이 났다. 처음 경험해 보는 느낌의 두려움. 나는 그 순간, 어쩌면 엄마가 할아버지를 따라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 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외할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낸 날,

그날은 엄마가 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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