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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죽기 좋은 날

쇼를 망친 돌고래 ep.9

by 민정

화장터로 향하기 전, 영결식 진행을 위해 휘청대는 오빠를 부축했다.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인사. 아비가 누워 있는 관 앞에 서자 자식들의 어깨가 하나, 둘 들썩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어? 하고 싶다는 일 좀 하게 두지. 왜 결혼 하나도 지 맘대로 못하게 해. 할아버지 때문이잖아.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로운 거. 엄마가 사는게 버거워서 자꾸 날 못살게 굴잖아. 그래도 잘가. 하늘에서 우리 엄마 좀 도와줘. 나 좀 살려줘. 눈을 감은채 원망을 쏟아냈다가, 이기심 어린 부탁을 나열하다가, 이내 갑작스런 누군가의 패악질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 씨발새끼들!!!!...


영결식장 안의 모든 눈동자가 허공을 돌아다니다 한곳에 모였다. 내 오빠의 주둥이로. 놀란 친척들이 "할아버지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라며 제지했지만, 밤새 술독에 빠져있던 망나니는 미쳐 날뛸 뿐이다. 보다 못한 사촌들이 힘을 써 오빠를 끌어내기 시작했고, 그는 무슨 악에 그리 받쳤는지 태어나 배운 모든 독설을 나열했다. 상스러운 고함소리가 서늘하리만큼 고요한 장례식장에 메아리쳤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홀로 가로지르며 오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를 침묵이 메웠다. "미친 새끼, 또 술 처먹고 저 지랄이네." 놀라지 않는 건 딱 한 사람, 나뿐이었다.


제 아비의 죽음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엄마의 심장에 또 다른 칼이 꽂혔다. 시들어가는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다음 일정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 안, 엄마는 누구와도 말 섞지 않았다. 그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창밖만 바라볼 뿐. 초점 잃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멎을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울린 문자 알림음.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는 파들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옆에 두고, 엄마는 초조한 듯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그리고 이내, 울먹거리며 말했다.


"정아, 이게 무슨 말이고?"

"엄마 대출받은 거 이자 내라는 내용이네."

"무슨 대출? 내 대출받은 적 없다..."

"받은 적이 없는데 이런 문자가 왜 오는데?"

"내 이 은행에 계좌도 없다. 정아..."

"제대로 확인한 거 맞나?"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옆에 두고, 엄마는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더니 초조한 듯 입을 뗐다.


"록이가 내 명의로 대출받았는갑다..."

"뭔 소린데? 오빠야가 엄마 명의로 어떻게 대출을 받노?"

"내가 컴퓨터를 못 하니까 연말정산 대신해 줬거든..
그거 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캐서 줬었는데..
그걸로 대출 받았는갑다..우짜노....우짜노 정아..."


엄마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식이 부모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꼴을 보고도 측은함을 느꼈던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강제로 단절된 경력을 딛고 일어나, 남편이 도박으로 날린 빚을 대신 갚으며 자식 둘을 겨우 건사해 낸 사람이었다. 우리를 키우는 동안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틈이 날 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아이들의 뱃속을 채워냈다. 관절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암담한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자란 아들 새끼에게 제대로 당했다. 이제야 숨 좀 쉬고 사나 했더니, 본 적도 없는 액수의 돈이 빚으로 남아 그녀를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화장터에 도착한 엄마는 다시금 벙어리가 됐다. 할아버지의 시신이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짐승처럼 통곡했다. 산산조각 나는 아비의 뼈를 보며 그녀의 억장도 부서지고 찢어지길 반복했을 거다. 아이처럼 목놓아 우는 엄마를 보며 왈칵 겁이 났다. 처음 경험해 보는 느낌의 두려움. 나는 그 순간, 어쩌면 엄마가 할아버지를 따라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 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외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날, 그날은 엄마가 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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