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망친 돌고래 ep.8
아무런 연고도 친구도 없는 타지 생활은 눈물 나게 서러운 날의 연속이었다. 퇴근 후 밥 한 끼 할 수 있는 이 하나 없었으며, 쥐꼬리만 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날려야 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남겨진 건 지독한 외로움뿐이었다. 무언가를 버티는 데 이골이 난 나에게도 쉬운 날이 없었다.
몇 년 후, 서울 살이에 익숙해진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엄마의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 사무실에 앉아 정신없이 두드리던 키보드를 밀어 넣고 고향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엄마는 부모의 건강이 노쇠해지자, 손사래 치기 바쁜 형제들을 대신해 두 분을 모시고 살았었다. 한창 사춘기인 자식들에게까지 짐을 덜어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집을 구해 홀로 두 집 살림까지 해가며 제 부모를 돌보기에 애를 썼다. 췌장암과 치매를 앓던 외할머니를 보낸 후 10여 녀 만의 장례. 엄마는 완벽한 고아가 되었다.
부모를 잃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일하는 엄마, 차렸다 치워지기를 반복하는 밥 상, 웅성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 푼돈에 마음이 상해 제 아비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 놓고서 신발을 벗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워 "아버지.. 아버지..." 통곡하는 이모까지. 외할머니 장례식 때와 흠결 없이 똑같은 풍경에 진이 빠졌다.
다음 날, 첫 타임으로 예약되어 있던 할아버지의 발인을 위해 새벽같이 몸을 일으켰다. 겨우 세수를 마치고 옷을 입으려는데, 엄마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다그침이 향하는 곳을 찾았다. 스스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비틀대는 남자가 보인다. 술에 취한 모양새. 오빠였다.
화장터로 향하기 직전,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하는 영결식을 코앞에 두고 두 사람의 전쟁에 또 한 번의 시동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