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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l 30. 2024

고아가 된 엄마

그녀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독립의 꿈을 이뤄낸 후 엄마의 감시 어린 눈빛을 벗어난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22살의 끝자락, 아무런 연고도 친구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타지 생활은 눈물 나게 서러운 날의 연속이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날려야 했으니까. 퇴근 후 밥 한 끼 할 수 있는 이 하나 없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남겨진 건 지독한 외로움뿐이었다. 그럼에도 돌아갈 수 없는 노릇. 가족은 있을지언정 마음 편히 기댈 가족의 품은 없는 나는, 이 상황을 견뎌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몇 년이 흘렀으려나. 서울 살이에 익숙해진 나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엄마의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 사무실에 앉아 정신없이 두드리던 키보드를 뒤로 하고 고향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엄마는 부모의 건강이 노쇠해지자, 손사래 치기 바쁜 형제들을 대신해 두 분을 모시고 살았었다. 한창 사춘기인 자식들에게까지 짐을 덜어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집을 구해 홀로 두 집 살림까지 해가며 제 부모를 돌보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썼다. 췌장암과 치매를 동시에 앓던 외할머니를 먼저 보낸 후 10여 녀 만의 장례. 그녀는 결국 고아가 되었다.


부모를 잃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일하는 엄마, 차렸다 치워지기를 반복하는 밥 상, 웅성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 푼돈에 마음이 상해 제 아비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 놓고서 신발을 벗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워 "아버지.. 아버지..." 통곡하는 이모까지. 외할머니 장례식 때와 완벽하리만큼 똑같은 풍경에 어쩐지 진이 빠졌다.


이틀간의 손님맞이를 마무리하고, 발인을 앞둔 날 밤이었다. 친척들이 모여 앉아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고, 밥상은 서서히 술상으로 변해갔다. 음주에 취미가 없는 나는 일찍 잠에 들었다. 자리가 좀 길어지는 듯했지만 그땐 상상도 못 했다. 앞으로 어떤 비극이 닥칠지.


다음 날, 첫 타임으로 예약되어 있던 할아버지의 발인을 위해 새벽같이 몸을 일으켰다. 겨우 세수를 마치고 옷을 입으려는데, 엄마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의 다그침이 향하는 곳을 보니 술에 취한 오빠가 스스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비틀대고 있었다.


화장터로 향하기 직전,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하는 영결식을 코앞에 두고

두 사람의 전쟁에 또 한 번의 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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