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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Aug 06. 2024

아픈 손가락

말이라는 걸 죽일 수만 있다면

오빠는 엄마 지갑에 상습적으로 손을 댔다. 어릴 때 흔히 겪는 과정이라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조금 더 커서는 그녀의 신용카드 앞뒷면 사진을 찍어 놓고서 멋대로 긁어댔다. 엄마는 지갑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화장대 구석에, 침대 전기장판 아래에, 옷장 위에. 불안함에 위치를 자주 바꾸다 보니, 나중엔 본인이 어디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자동차 조수석 앞의 서랍에 지갑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마저 결국 털렸지만. 휴대폰 소액 결제를 수시로 했으나 요금을 지불하지 못해 발신이 정지되기도 몇 차례. 언젠가 법원에서 우편물이 와 펼쳐보니, 통신 요금 연체 기한이 너무 길어져 가압류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남편의 도박 빚에 겨우 하나 남은 집 가압류 위기를 겪어본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몇 백만 원가량의 연체금을 갚아 주기도 했다. 취한 채로 귀가했던 어느 날엔 웬 택시 기사님이 벨을 눌렀다. 이 집으로 들어간 남자가 택시비도 안 내고 도망쳤다며. 복도식 아파트라 속이 훤히 보이는 덕에 어디로 들어가는지 쉽게 알아챘단다. 초인종 소리에 엄마가 문을 열자, 그는 방구석에 숨었다. 검지 손가락을 세워 연신 입에 갖다 대며 나를 바라본다. 그 추잡스러운 몰골을 보고 있자니 온몸의 피에 혐오감이 솟아 역류하는 듯했다.


돈 문제로 속 썩이는 자식들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이더니, 사달을 내고 말았다. 엄마의 추측이 완벽히 적중. 그녀의 명의로 대출을 낸 건 잘나신 장손이었다. 그 큰돈을 어디에 썼냐 물으니 저도 모른단다. 고작 게임과 술 따위에 허무하게 탕진된 거였다.


장례식에서의 만행을 목격한 친척들은 물었다. 오빠가 왜 저러냐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냥 무덤덤한 목소리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내 말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날 나는, 화장터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심각함을 느낀 이들은 그를 정신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입을 모았다. 실소가 터졌다. '치료? 아들이라면 죽고 못 사는 우리 엄마가 퍽이나 지 새끼를 정신병자로 인정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내 말에도 사촌 오빠들은 합심했다. 조금 고소하기도 했다. 그녀를 설득하는 말들 속에 '애들이 저렇게 된 건 다 이모 탓이다. 애들한테 상처준거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가득했어서. 아비가 죽은 것도, 하루아침에 빚이 생긴 것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 모든 상황이 본인 탓이라니. 조카들의 조언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가 됐을 거다. 그럼에도 그게 사실임은 변함없다. 엄마는 적어도, 그때라도, 그 말을 듣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우리 가족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녀가 내놓은 답이었다. 뒤이어 아들 새끼를 감싸는 멘트도 빼먹지 않았다. 역시, 저럴 줄 알았지. 이게 우리 엄마지. 그녀는 내 예상 답안지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 와중에 혹시나 또 다른 대출이 생길까 공인인증서를 폐기하는 건, 인터넷 뱅킹의 비밀번호를 모조리 바꾸는 건, 모든 은행 거래 내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해 시도 때도 없이 모니터링해 주는 건 내 몫이었다. 이래서 엄마에겐 딸이 필요하다는 걸까? 힘들 땐 딸 밖에 없어서? 참 웃기지도 않다. 행여나 더러운 꼴을 또 볼까 싶어 차오르는 구역질을 억누른 채 급한 불들을 껐다.


장례식이 완전히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내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들이 다 엄마 잘못이라는데, 그간 상처받은 게 그리도 많았었냐고. 연인과 저녁을 먹던 나는 고작 '미안하다' 네 글자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에게 난생처음 듣는 말. '그런데 너희 오빠 정신 병원 보내자는 얘기는 좀 아닌 것 같다. 그 정도는 아니기도 하고.. 엄마한테는 오빠가 아픈 손가락이다'라는 다음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하마터면 그 사과가 진심인 줄 알 뻔했다.


나는 '아픈 손가락'이라는 표현을 증오한다. 대체 누가 만들어 낸 단어일까? 말이라는 걸 죽일 수만 있다면 칼로 몇 번이고 쑤셔 도려내고 싶다. 엄마의 아픈 손가락을 부러트려 숨통을 멎게 하고 싶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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